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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4.07.17 21:00:00
  • 최종수정2015.01.16 11:33:00
이해관계에 따라 역사의 편린들이 모자이크처럼 촘촘히 박혀있는 발칸반도. 한 때는 세계의 화약고로 불릴 만큼 전쟁이 일상화됐던 지역이지만 그곳엔 이젠 증오를 넘어 사랑과 평화와 용서로 옛 기억을 애써 지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옛 유고 연방에서 독립된 7개 국가중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슬로베니아 3국을 돌아보며 비록 종교는 다르지만 자신들만의 색깔로 전쟁의 상흔을 치유해가는 이 곳 사람들과 때묻지 않은 자연을 스케치했다.

빨간 화살표가 1일차 이동경로.

-자그레브 그리고 사라예보

첫 목적지 자그레브(Zagreb:크로아티아 수도)를 가려면 오스트리아 비엔나(Vien)에서 그라츠(Graz)를 거쳐 슬로베니아 땅을 건너야 한다. 다행스럽게 두 나라는 EU(유럽연합) 회원국이어서 월경이 자유롭다.

가는 길에 슬로베니아 국경 근처에 위치한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 그라츠를 둘러봤다. 신성로마제국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으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마침 우리의 5일장과 비슷한 토요 장터가 서 쇼핑 대열에 합류했다. 싱싱한 체리 한 봉지를 사들고 다시 빙하가 녹아내려 흐르는 무어강변을 따라 걷다보니 잘 정돈된 알프스 풍의 건축물이 산뜻한 인상을 준다.

무어강에는 은빛의 인공섬(비토아콘지섬) 하나가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한강에 떠 있는 '세빛둥둥섬'과 흡사하다. 강물의 수위에 따라 높이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이 인공 구조물이 이 곳에서는 크게 주목을 받는데 우리는 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을까.

쿤트하우스의 괴기스러운 모습. 오스트리아 제2의 도시 그라츠의 심볼이다.

중세 건물과 대비되는 또 하나의 그라츠 심볼 쿤트하우스(Kunsthaus)도 유명 관광코스중 하나다. 괴기스럽게 생긴 이 현대식 건물은 외관이 통유리로 돼 있지만 자동으로 습도조절이 되도록 설계돼 있어 건축학적으로도 의미가 크다.

그라츠에서 슬로베니아를 넘어 약 3시간 30분 정도 달리면 자그레브에 도착한다. 중서부 유럽에서 아드리아해와 발칸반도로 이어지는 도로와 철도망의 주요 연계지다.

2차 세계대전 후 옛 유고연방이었던 크로아티아가 연방해체와 함께 내전을 거쳐 1991년 독립하면서 수도로 정한 곳이다.

본격적인 시내 투어를 스테파니 대성당에서 시작했다. 1102년에 건립돼 5천명이 한꺼번에 미사를 볼 수 있다는 대성당은 높이 105m와 104m의 주탑 2개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원래는 두 탑의 높이가 같았는데 지진으로 내려 앉았다고 한다. 자그레브를 상징하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마침 미사가 열려 내부를 들여다 봤다. 그곳에 잠든 스테파니 주교의 시신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인다.

대성당을 가로질러 구시가지 골목을 오르다 보면 자유를 갈망하는 조각상과 세르비아를 응징하는 성조지아상이 나타나고 이어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있는 석문 하나를 지나게 된다.

원래 4개의 석문이 있었는데 화재로 소실되고 유일하게 이 석문만 남았다고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부의 성모마리아와 예수상이 화재를 이겨내고 그대로 남아 있다. 이 곳에서 소원을 빌어 뜻을 이룬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 이름을 새겨 넣은 석판들이 벽에 많이 걸려 있는 걸 보면 예수님상이 신통하긴 한가보다.

크로아티아와 자그레브를 상징하는 한 성당의 지붕문양이 이채롭다.

언덕에 오르면 크로아티아와 자그레브를 상징하는 천연색 모자이크 문양의 지붕을 머리에 인 성당이 나온다.

그 좌측 건물이 대통령궁, 우측 건물이 국회의사당, 그 앞쪽 건물이 시청사 건물인데 하나같이 고풍스럽다.

시청사 건물 앞을 거쳐 반대편 골목으로 빠지면 신시가지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이 나타나고 다시 길을 내려오면 스테파니 대성당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는데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장소이기도 하다.

언덕길을 다 내려서면 넓은 광장이 한 눈에 펼쳐진다. 광장 중앙엔 동상 하나가 우뚝 서 있는데 헝가리 통치를 물리친 국민영웅 반 젤라치크(Ban Jelacic)가 주인공이다. 그의 이름을 따 광장이름도 '반 젤라치크 광장'이라고 부른다.

자그레브의 심장부인 광장 앞 도로를 분주히 오가는 트랩(전차)이 참 인상적이다.

하루를 묵고 보스니아의 수도 사라예보(Sarajevo)로 향했다. 서로의 앙금을 털어내지 못해서인지 국경에서 여권심사에만 1시간 이상을 소비했다.

보스니아의 정식 국가명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다. 발칸반도 최대의 이슬람 도시 사라예보는 이에리사 선수가 탁구를 제패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은 도시지만 직접 가서 본 시가지의 모습에선 전쟁의 상처가 아직도 깊게 박혀 있다. 건물 곳곳의 탄흔이 당시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다.

내전때 폭격으로 파괴된 보스니아의 한 공공기관 건물 잔해가 당시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다.

크로아티아나 세르비아와의 내전 말고도 시내 여기저기엔 파란만장한 역사의 흔적들이 묻어난다. 그 중 하나가 시내 밀야츠카강에 놓여진 '라틴다리'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도 대공과 그의 아내 소피가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에 의해 암살돼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던 곳이어서 관광 필수코스다.

역사의 현장을 지켜본 옆 박물관 건물벽엔 당시의 기록사진들이 걸려 있어 세월의 아픔을 웅변해 주고 있다.

바로 이어지는 뒷 골목부터는 볼거리가 풍성하다. 반들반들한 자갈로 덮인 옛 터어키 직인거리(일명 망치소리 거리)와 터키식 전통시장(바자르)을 걷다보면 마치 이스탄불에 온 착각이 든다.

뒷 골목에는 또 16세기 무역상들의 여관으로 사용됐던 2층 구조의 목조건물을 비롯해 우리의 옛 가옥과 비슷한 전통가옥들이 있어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오늘날 사라예보를 건설한 오스만제국의 술탄을 기념하는 '가지 후스레프 베그 모스크' 사원을 비롯해 세르비아계의 정교회와 카돌릭 성당이 한 불록내에 공존하고 있는 걸 보면 굴곡진 보스니아의 역사가 한 눈에 읽혀진다.

모스타르교로 불리는 아치형의 다리

사라예보에서 서쪽으로 약 1시간 40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면 모스타르(Mostar)라는 조그만 도시가 있다. 이곳을 꼭 들러야 하는 이유가 있다. 평화를 상징하는 다리 하나가 있어서다.

모스타르교로 불리는 아치형의 이 다리는 불과 폭 30여m의 네레트바(Neretva)강을 사이에 두고 평화롭게 살던 크로아티아계와 보스니아계가 갑자기 내전을 겪는 과정에서 마침 이 다리를 폭격하는 장면을 서방의 한 방송기자가 리포트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그 후 서방 국가들이 중심이 돼 강물에 가라앉은 1088개의 석부재들을 하나하나 건져 올려 2004년 완전히 복원함으로써 평화의 상징이 됐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재이기도 하다.

모스타르 다리 교각에 조그맣게 새겨놓은 '잊지말자93년' 이라는 문구가 화해를 호소하는 듯하다.

역사적으로 기구한 운명을 갖고 태어난 교량이어서 그런지 바닥에 깔린 돌을 밟으니 역사의 아픔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교각 귀퉁이에 새겨진 'Don't forget '93'이라는 작은 글귀가 크게 눈에 들어온다.

조약돌로 포장된 중세 터키풍의 거리 곳곳엔 전쟁의 상흔이 여전하지만 그래도 주민들의 표정에선 용서와 화해, 그리고 평화의 기운이 물씬 풍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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