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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마치 달팽이 껍질에 동승해 올라가고 있는 기분이다. 나선형으로 완만한 길 따라 남한강 절벽 위에 세워진 만천하 스카이 워크를 걷는다. 말굽형의 만학천봉 전망대에 세 손가락 형태의 돌출 부분이 보인다. 유리를 통해 발밑에 흐르는 남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다. 거기까지는 무리라 데크에 서서 아래를 훔쳐본다. 좋다. 가을 하늘과 바람이 닿는 햇빛이 쏟아진다. 사람 구경하는 재미까지 쏠쏠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이완된다. 긴장하고 실수하며 헤맸던 지난 두 달의 시름을 덜어내기에 최적의 공간이다. 업무적인 일도 거듭되는 시행착오로 인해 힘들었지만, 사람으로 인한 상처가 깊게 남아 있다. 상대방은 화를 내고 돌아서면 그뿐이었을 테지만, 종국에는 내 탓으로 귀결되어 자존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흑과 백이 분명하지 않고 결단력 없는 성격과 '착하다'라는 타인의 시선에 눈치 보며 살아온 인생이 모두 거부당한 기분이었다. '착하다'라는 한 마디에 기분 좋게 양보하고, 솔직하지 못한 성격이 '바보 같다'라는 비난으로 꽂혔다.

단양의 아름다운 풍경과 시원한 물줄기가 내면의 찌꺼기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자연이 주는 치유의 힘을 새삼 느낀다. 충북 문학인대회 장소로 찾아온 이곳에서 주저앉은 나를 다시 세운다. 인생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중한 것임을 잊고 있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즐기고 일정이 끝난 후, 숙소로 돌아와 회원끼리 모여 뒤풀이를 이어갔다. 해마다 하는 행사지만, 이번처럼 재미있게 참여한 건 오랜만이다. 거기에 더해 새벽 1시까지 화장을 지운 민낯으로 별일 아닌 얘기에 박장대소하며 함께 밤을 보낸다는 것도 획기적이다. 방주인이 사회자가 되어 순서를 이어 갔고 내게 건배를 재촉한다. 평범한 문구로 술잔을 부딪치며 화합을 다진다. 이런 기회가 오랜만이라 서로 돌아가며 건배가 이어졌다. 그때 '청바지'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청춘은 바로 지금.' 많이 들었던 줄임말인데 새롭게 다가온다.

세계적인 명문대학 영국 옥스퍼드대학에 있는 해시계에 새겨진 문구를 읽는다. '내 바늘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미래와 과거를 나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어두움 속 당신의 능력이 미치지 않는 곳에 서 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선 뒤로 사라진 과거는 더 이상 당신의 것이 아니다. 단지 하나의 시간만이 당신 손안에 지금 있다. 현재란 바로 그림자가 멈춘 그곳이다. '이 글을 다시 한번 읽으니 체온이 1도 상승한다. 과거는 이미 사라지고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시곗바늘을 되돌린다 해도 돌아오지 않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로 돌아가서 시작을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 시작해 미래의 결과를 바꿀 수는 있다'는 클라이브 루이스의 말처럼 미래는 내 몫이다.

바보처럼 느껴지는 '착하다'는 성격과 지금까지 나를 지탱한 성품을 바꿀 수 없다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일은 조금 더 주인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역사가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담고 있듯이 인생도 그러하다. 1초도 허투루 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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