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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곁을 내주는 아이가 말을 한다. 뒷자리에 앉아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자꾸만 말을 하는 아이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감정이 차올라 눈물이 맺힌다. 기대는 아이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을 두드린다.

삼 개월 동안 일주일에 세 번씩 한 시간 남짓 만난 것이 전부이다. 초등학교 3학년 교실에 들어가서 도움이 필요한 두 아이 사이에 의자를 놓고 앉아서 협력 강사로 활동을 했다. 첫날은 잘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과하게 끼어들기도 했다. 아이들은 거부감을 말과 행동으로 표현하면서 밀어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기다림을 배우고 조금 천천히 다가가려고 노력했다. 앞에서 지도하는 담임 선생님께 집중할 수 있도록 한마디씩 하거나 도와달라고 말할 때 도움을 주는 역할이다. 밀어내기만 할 것 같았던 아이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말을 거는 횟수가 늘었다. 담임 선생님께서 칭찬으로 주는 젤리를 내게 줄 때는 감동 그 자체였다. 작은 거지만 아이들에겐 가장 소중한 자신의 것을 내어 주는 것임을 알기에 거듭 거절하다가 받았다.

어른에게 다가서는 아이는 솔직하다.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는 순수한 관계로 이어갈 수 있어서 좋다. 물론 아이도 때로는 예의 없는 행동과 말투로 상처를 준다. 방과후 강사로 이십여 년 넘게 수많은 아이를 만났다. 시절에 따라 아이들의 성향도 바뀌고, 점점 더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촉각을 세우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던 중에 긴장된 마음을 풀어 주는 드라마를 보게 됐다. 우연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게 됐고, 이제는 본방송으로 안 보면 조급할 정도다. 자폐스펙트럼장애가 있는 천재 변호사인 그녀의 강점은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과 선입견이나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불안한 몸짓과 반복적인 행동은 그녀의 약점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 ASD)는 사회적 상호작용과 의사소통에 지속적인 결함을 보이면서 제한적이고 반복적인 행동, 흥미, 활동을 보이는 발달 장애를 말한다. 스펙트럼이라는 말처럼 자폐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드라마에서 그녀의 모습은 자폐에 대한 장애의 무게를 보는 이로 하여금 밝고 긍정적으로 변화시켰다.

한 회 한 회 새로운 사건에 부딪혀 풀어가는 그녀의 태도와 말투에서 긍정의 기운을 얻는다. 매회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 생긴다. 오래도록 내 머릿속에 각인된 순간은 법무팀 직원과 차에서 나눈 그녀의 말이다. 그가 '변호사의 직감을 믿으라'라고 조언하자, 그녀는 '자폐인은 남의 말에 잘 속고 거짓말을 못 하기로 유명하다'라고 답한다. '자폐인이 순수해서 그런 것이 아니냐'는 물음에 그녀는 '사람들은 나와 너로 이뤄진 세계에서 살지만, 자폐인은 나로만 이뤄지는 세계에 사는 데 더 익숙하다며 사람들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다른 의도를 갖고 나를 속일 수 있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자꾸만 잊어버려서 거짓말에 속지 않으려면 매 순간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건조하게 말한다.

수업하면서 만나는 아이들 중에는 자폐아도 있었다. 조금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리거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할 때는 흔히 하는 말로 '자신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여겼다. 보여 지는 행동을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문제상황을 만들지 않으려고 거리를 두었다. '우영우'의 존재감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다른 이의 세상에 경청하는 마음을 갖게 했다.

몸을 반쯤 내게 기울여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는 아이에게 두 귀를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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