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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연분홍 고운 겹벚꽃이 한창이다. 벚꽃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지나가는 아쉬움을 채우고도 남는다. 날씨는 가늠하지 못할 정도로 하루 만에 겨울에서 초여름으로 바뀌었다.

일요일 밤에 외국인 대상 한국어 이해 수업으로 정치 부분을 가르치면서 다른 때보다 더 큰소리로 힘있게 강의했더니 목이 아프다. 우리나라의 민주화 과정 중에서 처음 일어난 민주화 운동으로 4·19에 대한 사건이었다. 중요 내용을 전달한 후 짧은 영상을 보여주며 이해도를 높인다. 올해 63주년을 며칠 앞둔 시점이라 더 흥분했었나 보다.

학창시절 역사는 암기과목으로 벼락치기 공부로도 점수가 잘 나오는 과목이었다. 기록 그 이상의 의미를 생각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정치에는 무관심했다. 세상일에 조금씩 관심을 두고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은 관련 사건을 영화로 접하면서부터이다. 거기에 더해 결정적인 것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이해를 가르치면서이다.

한국 사회 이해는 영주권이나 국적 취득을 목적으로 사회, 문화, 경제, 정치,역사, 지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5년여 동안 가르치면서 교재를 열 번 넘게 봤지만, 한국인인 나도 어려운 내용이다. 그 내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역사적 기록에서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열여섯 어린 나이에도 만세운동을 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모진 고문으로 순국한 유관순 열사의 앳된 얼굴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

역사나 사건을 전개해서 그 안에 숨어 있는 사람과 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방송을 즐겨 본다. 하나의 사건은 시대적 상황을 배제할 수 없고 어둠에 가려진 일이 많았음을 자각하며 뒷얘기를 듣는다.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감정이입을 하면서 범접할 수 없는 신념을 행동으로 옮긴 이들을 존경해본다. 보면 볼수록 무고한 이의 아픔과 죽음이 슬프고 안타깝다.

스물두 살 법학도는 고향 부모님과 집안 어른들의 기대를 알고 있지만, 그 시대 청년학도로서의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다. 4월 19일 오후, 시위대를 향해 경찰의 조준사격이 시작됐고 선두에 있던 학생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그가 노희두 열사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유, 민주, 정의를 외치며 불의에 항거했던 민주열사들, 수많은 젊은 청년이 뿌린 혈흔은 민주주의의 단초가 되었다.

4월만 되면 생각나는 T.S. 엘리엇의 '황무지' 첫 구절이 선명하게 새겨진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시인의 4월은 문학적으로 생명이 탄생하는 화려한 계절이지만 여름 그리고 가을이 지나면 겨울이라는 마지막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표현일 게다. 따뜻한 봄날 피어날 꽃을 기다리고 즐기지만, 또 지게 되는 끝이 있음을 알고 시작하는 이별을 전제로 하는 만남이다.

그와는 다른 의미로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잔인한 달로 표현되는 4월에 수많은 생명의 상실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지 얼마 안 된 제주 4·3 사건은 갓난아이부터 노인까지 수많은 주민의 희생이 있었다. 고립된 섬에서 사투를 벌인 참극은 무려 7년여 동안 이어졌다. 보기만 해도 숙연해지는 노란 리본이 거리에 가득한 것도 이맘때다. 어린 자녀의 죽음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던 4·16 세월호 참사의 기억은 영원히 바다에 묻히지 않을 것이다.

연한 초록으로 산천이 봄빛을 드러내고 점점이 꽃으로 피는 봄처럼 그들의 청춘도 아름다웠을 것이다. 해마다 다시 오는 봄처럼 잊을 수 없는 그들의 삶과 시간을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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