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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초등학교 6학년 때 인근 대바위로 가을소풍을 갔던 거리를 카카오 맵으로 다시 확인하니 물경 14.3㎞이다. 어린 걸음에 편도 두어 시간 족히 걸렸어도 소풍이라 그런지 힘들다거나 멀게 여기지 않았다. 한적한 시골 길에 물 졸졸 흐르는 도랑도 두어 개 건너고 황금빛 들녘 사이로 송사리가 투명하게 보이는 냇물도 지나며 화창한 가을 빛에 등도 따셨다. 오는 길에 점순이랑 물고기라도 잡았다면 '소나기'와 비슷한 정경이련만 그냥 걸었다. 요즘 초등생들은 엄두도 못 낼 거리를 인솔자도 없이 친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돌아왔던 장면이 여름철 소낙비 맞으며 소를 뜯기던 때처럼 선명하다. 당시엔 자전거도 동네에 한 대 있을 지경이라 비교적 가까운 구말 장터가 오리 길이고 더 먼 시오리 길 진천 읍내 장도 걸어서 다녀왔다. 걷기는 생활의 한 부분이라 먼 길도 어렵지 않게 여겼나보다.

예전에는 어땠을까. 조선 시대에는 교통수단이라야 상류층이나 부유한 사람은 말이나 당나귀를 탔을 테고 대부분 걸어서 이동했다. 그 중 여력이 있는 양반가와 사대부집안 자제들은 거경궁리와 격물치지 공부의 성과를 이루려 산행과 명승지 탐방 등으로 심성을 도야했다. 특별히 사색에 방해를 받지 않으려 홀로 걷는 것을 유상(遊賞)이라 한다. 유상의 어의적 의미는 명소 고적 따위를 노닐며 관상(觀賞)하는 것으로 마음에 드는 풍광을 호젓이 즐기는 모습이다. 경치를 완상하면 유상이요, 고적하게 산을 오르면 유산(遊山)이다. 마치면 선비들은 견문록으로 공부 기록을 남기는데 백운동서원을 창립한 신재 주세붕의 유청량산록은 그 중 백미로 가름된다. 퇴계선생도 많은 유산시를 지었는데 오죽 산을 좋아했으면 청량산을 吾家山(우리 집 산) 이라 이를 정도였다. 선생이 막역지우 벽오 이문량과 청량산으로 향하며 지은 시에 정경 묘사와 더불어 시냇가에서 기다리는 약속임에도 그림처럼 멋진 풍광을 보고픈 열망에 먼저 산에 들어가는 설렘이 잘 나타나있다. 유상과 유산의 진면목이겠다.

烟巒簇簇水溶溶 뾰족한 산봉우리에 물은 졸졸졸

曙色初分日欲紅 새벽 여명 걷히니 해가 솟아 오르네

溪上待君君不至 시냇가에서 그대를 기다리나 오지 않으니

擧鞭先入畵圖中 먼저 고삐잡고 그림 속으로 들어 가네

요즘 많은 사람들이 걷기에 열심이다. 전국을 일주하려는 목표로 걷거나 근처 동산이나 농로 길을 작정하고 걷는 사람들로 길이 메인다. 공부의 일환이라기보다는 신체 건강을 위함이고 사람을 오히려 피하는 모습 외에 걸으며 블로그나 페이스 북 등에 자취를 남기는 것은 예나 진배없다. 휴대폰을 켜고 걷고 친구랑 이야기꽃으로 수를 놓으며 걷는다.

혼자 걷노라면 몰입할 수 있어 좋다. 생각을 정리하는 대신에 지워 머리를 비우게 되니 무심지경으로 빠지게 된다. 휘적휘적 걷다보면 내 걸음이 앞길로 나가는 것인지 산길이 내게 다가오는 건지 분별이 안 간다. 이리 걷다가 초정 구녀산까지 갈 뻔했으니 마음으로야 『수호지』의 신행태보 대종이 찼다는 갑마를 갖추면 하루에 기백 리도 너끈하겠다.

딱따구리가 나무 찍어대는 소리, 나뭇잎에 듣는 빗물 소리, 산허리를 감싸는 바람소리에 걸을수록 마음이 흥겹다. 침잠하여 걷노라면 살얼음을 비집고 돋아나는 새싹의 몸짓인 듯 햇볕에 얼음 녹는 소리도 들리니 신기하다. 대화하며 걷자는 친구의 제의보다 공부한 구절을 조용히 반추함이 좋으니 유상이요, 거의 매일 오전 그림자랑 산길을 걸으니 유산이요 홀로 걷는 즐거움이다.

독서를 사람들이 유산과 흡사하다 하는데 이제 보니 유산이 독서와 비슷하다(讀書人說遊山似 今見遊山似讀書)는 선생의 말을 재음미한다. 우둔한 나는 차라리 유산 후 독서로 두 배 효과를 입고 싶다. 두발로 땅을 딛고 걸을 수 있어 좋다. 호젓하게 자연을 느끼고 생각을 비우며 걸으니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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