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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상당고 교장

서울에서 독서 교과서 집필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하철을 탔을 때의 일이다. 하필 러시아워라 자료가 가득 든 책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밀리고 밀리다가 열차 한 복판까지 가게 되었다. 고리를 잡고 서서 그날 회의에서 발표할 책의 구성과 내용에 골몰하고 있는데 언뜻 앞자리에 앉은 아가씨를 보니 제법 예쁘다. 나이 든 사람 눈에는 젊기만 해도 예쁜 법인데 이목구비도 또렷하고 눈빛도 생기 있으며 게다가 생머리가 길게 너울거리니 더욱 예뻐 보인다. 그런데 그 어여쁜 아가씨들이 쭈뼛쭈뼛하더니 그 중 한 사람이 일어나며 '저.... 여기 앉으세요.' 라며 내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 아닌가. 마음 같아서는 같이 카페에서 차도 마셔 주겠고 데이트도 하겠구먼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 자리 양보 받을 나이는 아닌 것 같은데 나의 외양이 그리 노쇠해 보이나 싶어 깜짝 놀랐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해도 남의 속내도 모르고 부득부득 막무가내로 앉으라 권한다. 그렇다고 아직 내 다리가 실하여 두어 시간 있어도 너끈하다고 항변할 처지도 아니고 주위의 이목도 있고 해서 마지못해 앉으니, 마치 경로석에서 여든 어르신들 중간에 끼어 앉아 있는 것처럼 불편하기 짝이 없다.

며칠 후 있었던 고등학교 동창회 자리에서 주변의 친구들에게 지하철에서 있었던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일을 얘기한 즉, 옆에 있던 친구가 운을 더한다. "야! 그 정도는 약과다. 나는 지하철에서 멍청하니 서 있는데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나이도 젊고 고운 아줌마가 자기 옆에 있는 유치원생 쯤 되어 보이는 아들에게 '얘! 할아버지를 보면 얼른 자리를 양보해야지·'라 하는데 정말 창피해서 죽고 싶었다"라 한다. 거기다가 그 아줌마를 흘끔 흘끔 쳐다봤던 자신이 얼마나 창피하고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말을 하여 좌중을 실소케 하였다.

나이 듦의 그 낯선 시간 속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은 좀 더 느긋해야 하지 않을까. 느긋함에서 여유가 나오고 낭만도 나오고 더욱이 삶의 지혜가 샘솟을 것 같다. 가을 찬바람에 노랗게 떨어지는 은행잎과 함께 노사연의 [바램] 가사가 귀에 남는다. "등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운 몸을 아프게 하고, (중략) 나는 사막을 걷는다 해도 꽃길이라 생각할 겁니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잘 익어가야 향기도 나고 먹기도 좋겠고, 볼 만하면 서재에 두고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이제껏 우리는 칼 융의 생애주기로 인생 단계를 살펴보았는데 그가 주장한 이론이 인류의 평균수명이 연장되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2015년에 유엔에서 18세에서 65세를 청년으로, 60세에서 79세는 중년으로 그리고 노년기를 80에서 90세로 잡고 100세 이후를 장수 노인으로 가름한다.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환갑 못 넘기고 돌아가시는 분이 많았는데 그 나이를 훨씬 넘은 60 노인네도 이제는 펄펄한 청년이라는 말이 아닌가. 노인이라고 얼떨결에 좌석 양보도 받았는데 우리를 갑자기 청년이라 칭하니 그렇다면 마음과 몸을 다시 잡아야 하나 보다.

사람은 자연에서 배운 다 하는데, 이제 가을을 지나며 나무들이 모두 잎을 떨어뜨리고 있어 길가에 뒹구는 낙엽을 보며 처연한 감이 드는 것은 이른 바 청년이 가질 마음이 아니겠다. 그럼에도 이 가을에 버리면 남는 것이 있고, 비우면 채울 수 있다는 삶의 이치를 배우는 보람도 있다. 겸손하게 우주의 진리에 순응하여 비우는 자세로 살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버린 뒤에도 남거나 오히려 채워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일까 아니면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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