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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상당고 교장

영국 언론사에서 전 국민 대상으로 퀴즈공모를 하였다. 북쪽 최끝단의 시골 마을에서 런던까지 걸어서 달포 걸리는 길을 가장 빨리 올 수 있는 법을 제시하며 당첨자에게는 1천만 파운드를 주겠다는 내용이다. 말을 타고 오겠다, 기차를 타고 온다, 쾌속 오토바이를 타고 죽자 사자 달려온다, 경비행기로 날아온다는 사람 등 많은 답이 쇄도하였다. 그런데 정작 1등 당첨 작은 "좋은 사람과 함께 걷는다!"였다. 철학이 발달한 나라라 그런지 다분히 현학적이고 다소 의외의 답임에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과연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답이다. 마음 통하는 사람, 좋은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 즐겁거나 행복하게 여겨지는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짧게 느껴지니까.

초임 때 괴산에서 테니스 모임을 결성하고자 변두리인 대사리에서부터 괴산 읍내 모 식당까지 퇴근하고 40여분 걷게 되었다. 요즘이야 차가 일상화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돈 많은 사람이나 오토바이를 탔고, 선생님들 대부분은 자전거로 출퇴근할 때였다. 그나마 자전거조차도 갓 부임한 총각 선생에게는 사치스런 탈 것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마침 동행자가 몇 명 있어서 '많이 걸어서 다리 아프지는 않느냐·'고 모임의 발기자로서 딴에는 배려 깊은 질문을 했더니, "누구랑 걷느냐에 따라 다르지요." 라고 그 중 키 크고 날씬한 처녀선생님이 대답을 하였다. 이크! 저 독일어 선생님은 '파우스트'를 읽은 때문인지 다분히 철학적이고 생각 깊은 답을 한다고 여기며 그 답을 곱씹게 되었다. 같이 걷는 사람이 좋게 여겨지면 길이 어렵고 멀어도 힘들지 않게 느껴질 것이요, 같이 걷는 사람이 불편한 사람이라면 짧거나 평탄한 길도 멀고 힘들게 느껴질 것이 아닌가. 대답을 년 전의 그 처녀 선생님은 지금 우리 집에서 아이도 낳아주고 퉁퉁하게 변하여서도 내 곁에서 함께 잘 걷고 있다.

외국어과 교사들에게는 전공 교과별로 현지에 가서 어학연수를 받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방학 때에 친한 선생님끼리 그룹지어 떠나서 공부 후 추진한 여행 중에 마음이 틀어져 떠날 때는 분명 친구였는데 들어올 때는 서먹한 사이로 오는 경우도 왕왕 본다. '그 사람을 알려면 같이 여행을 해 보라'지 않는가. 오랜 길의 어려움으로 가면은 벗어지고 그 사람의 내면 성품까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되니, 길이 멀면 말의 힘을 알게 되고 날이 오래되면 사람의 마음이 보인다(路遠知馬力 日久見人心). 오랫동안 같이 걸어보면 분명 사람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으리라.

요즘 건강 백세시대를 염원하며 많은 사람들이 없는 틈을 내어 걷고 또 걷는다. 어떤 선배는 매일 새벽 2시 반부터 6시까지 걷는다 하니 건강을 위한 자기 관리가 철저함에 놀라울 뿐이다. 산티아고 순례 길을 버킷리스트로 삼는 사람도 있고, 그 길을 준용하여 제주도 올레 및 전국 둘레길 등 갖가지 이름의 길이 앞 다투어 생겨나고 이렇게 많고도 다양한 길을 인생처럼 우리는 걷고 또 걷는다.

걷는다는 것은 세상을 향하여 자기를 열어가는 것이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을 이고 건강함을 드러내는 멋진 일이다. 인간의 근육 중에 가장 오묘한 부분인 발바닥을 활용하여 걷고 그리고 비워가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신기한가. 그럼에도 좋은 사람과 같이 걸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그리고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자리하고자 나 자신을 더 좋게 변화시킨다면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좋아하는 상대가 과연 내가 좋아하는 만큼 나를 좋아해 줄지는 모르나, 아무튼 의연한 자세로 그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자리하고자 오늘도 길을 걷는다.

모두들 좋은 사람과 함께 먼 길도 걸을 수 있는 운 좋은 사람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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