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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8.12 14:22:04
  • 최종수정2018.08.12 14:22:04

김병규

교육학 박사

도산서원 마당 전면으로 낙동강을 끼고 동그마니 솟은 시사단은 서원의 풍광 중에서도 아름다운 곳이라 사람들이 쉽게 발을 떼지 못하는 곳인데 '선비를 뽑는 곳'이라는 역사적 유래가 있다.

정조대왕은 제왕학을 구비한 군주로서 신하의 학식을 능가하는 분이셨다. 공부한 사람은 학자를 알아보는지라 퇴계선생을 앙모한 때문에 재위 16년째인 1792년 3월 24일 어제문으로 상덕사에 치제를 드리고 다음 날 서원 앞에서 별과를 시행하도록 각신 이만수에게 전교를 내렸다.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으나 대략 탕평책을 실현할 참신한 인재 선발과 선생의 학덕으로 서학에 물들지 않은 영남 유림을 칭찬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이인좌의 난에 가담하였다는 이유로 과거 응시기회마저 박탈당했던 영남 유림이 '무신창의록' 상소로 청원한 결과 난 이후 65년 만에 복권되는 순간이었다. 그때 전교 내용과 도산별과를 치룬 내용은 서원 전교당에 편액으로 게시되어 있거니와 과거 시행 장소를 기념하여 설립한 것이 시사단이다. 당시 과거 응시자만 7천228명이었고 시권 제출자 3천632명 중에 강세백과 김희락의 답지가 압권으로 채택되었다. 과장에는 1만 여명이 넘는 대 인파가 운집하여 '영남 사대부가 만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니 분명 장관이었으리라. 높직이 솟아 오른 시사단은 영남 유림의 한껏 고무된 士氣를 보여주는 기념물이다.

기회가 되어 서원의 밤 풍광을 볼 수 있었다. 낮 경치가 멋진 이상으로 보름달이 떴을 때에 천연대에서 바라보는 시사단 경치란 자못 심신이 황홀할 지경이다. 한 여름 깊은 밤중에 세상은 휘휘적막하고 바람은 소슬한 가운데 낙강에 아롱져 부서지는 달빛만 찬연하다. 선생의 제자들도 달빛 어우러진 낙강의 경치를 관란헌에서 즐겼으리라. 아하! 천광운영에 어린 월야시사단이라!

마침 선생도 달밤의 멋진 경치에 뱃놀이 한 기록이 있다. 신유년(1561)년 4월 16일에 선생이 조카와 손자 안도 및 덕홍과 더불어 달밤에 탁영담에 배를 띄워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서 반타석에 배를 정박했다가 역탄에 이르러 닻줄을 풀고 배에서 내렸다. 세 순배 술을 마신 다음 선생이 옷깃을 바루고 단정히 앉아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고 한참동안 가만히 계시더니 전적벽부를 읊으셨다.(간재집 중)

수행하였던 간재 이덕홍이 이 뱃놀이를 시로 그렸다.

사월 창랑한 밤에(四月滄浪夜)

푸른 하늘 넓고도 넓도다(蒼蒼以鴻00)

하늘빛은 물색과 어우러져(天光與水色)

밝은 달빛 가운데에 배회하네.(徘徊月明中)

유인은 어디에 계시는가.(幽人在何許)

외로운 배에 물만 조용히 흐르네.(孤舟水溶溶)

선생께서 적벽부를 읊조리시니(先生吟赤壁)

맑은 뜻 더욱 밝게 녹아든다.(淸意更昭融)

젊은 후배 속세의 무리가 아닌지라(少輩非塵類)

마음 맑아 흥이 끝없어라.(心淸興不窮)

비록 이 세상에 살지만(雖居此天地)

바로 이것이 천상계의 풍류구나(却是上界風)

제자의 눈에 비친 선생의 밤경치 완상은 문자 그대로 시경 위풍 편명인 고반(考槃)의 모습-은거하여 산수를 즐김-이다. 유인의 향기를 풍기는 스승을 좇아 평생을 같이 하려는 제자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수백 년 후생인 나는 시만 읽어도 가슴이 뜨거워지고 또 절절해 온다.

선비의 기상을 추월한수(秋月寒水)로 가을 달이 찬 물에 비친 듯으로 묘사한다. 골지어 흐르는 물결에서도 온전한 가을 달을 보려면 나의 마음을 살펴 관조의 상태에 들어야 하겠지. 천년의 마음을 살필 공덕으로 나의 마음이 평정하여 맑지 못하면 아무리 보름달인들 조각나 흔들리는 달빛만 간신히 얻어 볼 뿐이다. 주자의 '관서유감'에 하늘빛과 구름 그림자가 같이 떠돈다(天光雲影共徘徊)라는 말도 그런 의미일 게다.

하이얀 세모시 한복 두루마기로 달빛 어린 시사단에서 역사를 보고 달아나려는 마음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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