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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우리가 피리라고 잘못 말하는 대금은 신라 시대 이래 내려오는 악기로 '천년을 잇는 소리'로 만파식적이라 불린다. 대금에는 정악대금과 산조대금이 있는데 내 능력으로 두 가지를 다하는 것은 무리거니와 조선 명신 맹사성을 닮고자 한 연유로 정악 대금만 제대로 잡고자 하였다. 정악 대금은 산조대금보다 길이가 더 길어 소리가 깊고 부드럽다. 대금을 잡은 것은 내 인생 아주 잘 한 일 중의 하나임은 틀림없으나 음악적 소양도 부족하고 재능까지 미천하여 도대체 소리에 진전이 없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 숨도 딸리니 점점 대금을 잡는 것이 힘에 부침을 체감하게 된다. 그만큼 소리는 나빠지고 말이다. 석양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후회를 느끼지 않는다면 나름 훌륭하게 산 증표라는데 기운 있을 때 대금도 열심히 할 것을.....

그럼에도 대금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허전하여 혹여 1박 2일의 출장에도 갖고 다니는 버릇이 생겼다. 마치 고불 어른이 주야장창 대금만 잡았던 것처럼 말이다. 조선 후기 대금 명인 정약대 선생은 매일 인왕산에 올라 수연장지곡을 불어 한곡에 모래 한 알을 짚신에 넣어 모래가 가득 찬 뒤에야 산을 내려왔다 한다. 이처럼 분신으로 대금을 대해야되거늘 이따금 생각날 때 대금을 잡으면서도 소리가 안 좋다고 성깔부리니 노력은 없이 요행히 일확천금을 노리는 속인의 자세와 진 배 없다. 요즈음은 대금 소리를 낸다기보다 조식의 방편으로 대금을 잡는다고나 할까. 숨에는 들숨과 날숨이 있고 대금을 부는 것은 날숨이지만 들숨을 깊이 들이마시다 보면 운기행공까지는 안 되더라도 명상 비슷한 단계에는 가게 되므로 대금 소리는 하루 시작의 윤활제로 가름된다.

금년 1월에 터키를 가게 되었다. 패키지 여행의 특성 상 여분의 시간에는 대금에 숨을 넣고자 두 자루를 케이스에 고이 담았다. 그런데 세변의 합이 115cm를 초과하므로 기내 반입이 불가하단다. 정히 나 갖고 가려면 16만원의 별도 수하물료를 내야 한다는데 소중한 악기를 짐칸에 넣는다는 손상의 우려와 함께 32만원의 왕복 비용 부담도 솔치 않다. 주차장이 없이 빼곡한 장소에서 할 수만 있다면 주머니에 차를 구겨 넣고픈 심정으로 직원에게 처리 방안을 묻자 가까운 택배에 맡기란다. 하는 수 없이 일당 8천원의 보관료로 모 택배회사에 맡기고 오려니 어린 아이를 고아원에 두고 오는 심정이라.

여행 때 매양 어깨에 둘러메던 대금 가방이 없으니 무언가 빠진 듯 영 허전하다. 탑승 대기를 하면서 다른 항공사도 둘러보니 휴대 수화물 규정이 158cm이라 여기도 기내 반입은 어렵겠다. 9일간 곁에 있어야 할 놈이 없어 아쉽고, 이따금씩 조반 후 여분의 시간에는 없는 대금이 그립다. 모처럼 큰 마음먹고 장만하여 이제야 제법 손때가 묻기 시작한 대금이 추운 날씨에 터지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불안한 마음도 든다. 한 겨울에 국악하는 지인들과 회식을 할 경우에 다른 사람들은 악기를 차에 두고 내려도 우리 대금 잡이들은 꼭 방에 안고 들어가서 밥을 먹었기로 말이다.

자! 대금이 없으면 허전하니 이참에 항공사 규정을 살펴 갖고 나갈 방법은 없을까 궁리하던 차 묘안이 생겼다. 대금을 나누어 짧게 하면 되지 않을까· 청주에서 대금을 만드는 범천공방에 들러 범천선생에게 말하자 이미 하나 만들어 불기도 한다며 즉각 청공과 지공의 중간 부분을 나누어 소금 길이로 만들어 주겠단다. 게다가 가격도 저렴하게 해 준다니 다행이다. 소리도 마음에 든다. 이렇게 하여 여행용 대금인 분절대금이 내게 다가왔다. 이제 여행 중에는 캐리어 안에 넣을 수 있으니 인도에서처럼 공항 직원에게 대금이 악기임을 증명하고자 불어 줄 일도 없겠다.

그런데 이 분절대금을 갖고 얼마나 그리고 언제까지 비행기 여행을 할 수 있으려나· 정조대왕이 규장각 주합루 앞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하신 탄식이 절로 나온다. 일모도원(日暮途遠-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멀구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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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