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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상당고 교장·교육학 박사

다산 정약용이 강진에서 유배생활 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사의재 앞에서 동네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는데 그중 더벅머리가 다산의 눈에 들었다. 세 번이나 불러도 가까이 못 오고 수줍어 하는 녀석에게 이름과 나이 등을 물은 뒤에 "네가 이곳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겠느냐·"라 재차 물었다. 소년은 "부모님이 계시니 부모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따르겠습니다."라 대답했다. 그 소년의 이름은 황상이요 자는 산석으로 아전 황인담의 아들이었다. 아비 황인담은 "이는 바늘과 실이 서로를 필요로 함이다. 너는 가서 따르도록 해라. 다만 스승과 제자는 의리가 중하니 조심하고 삼가서 거역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아니 된다"라 지침을 준다. 대화 내용을 보니 스승 못지않게 제자와 그 아비도 훌륭하다. 스승은 배움은 넘치는데 적소에서 가르칠 제자가 아쉬웠고, 제자는 우선 부모님의 뜻을 존중하고 있다. 아비는 아들에게 사제의 도리를 강조하여 공부를 함에 삼가고 조심할 부분을 정확히 일러 준다. 이른바 교사와 학생 학부모-학교 구성원-의 조합이 이상적이다.

제자의 예를 드리고 공부를 배운 지 이레 되던 날이다. 다산이 文史(문학과 역사)를 배우라 하자 산석은 머뭇머뭇하며 부끄러운 빛으로 사양했다. "제게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둔한 것이요, 둘째는 막힌 것이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이에 다산은"배우는 사람에게 병통이 세 가지 있는데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데 민첩하면 그 폐단이 소홀한데 있다. 둘째 글짓기에 날래면 그 폐단이 들뜨는데 있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그 폐단은 거친 데 있다. 대저 둔한데도 들이파는 사람은 그 구멍이 넓어진다. 막혔다가 터지면 그 흐름이 성대해지지. 답답한데도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그러면 뚫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틔우는 것은 어찌하면 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는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떻게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황상은 둔할 둔(鈍), 막힐 체(滯), 어근버근할 알(戞) 세 가지를 문제라 하였고, 스승은 재빠를 민(敏), 날카로울 예(銳), 빠를 첩(捷)의 세 글자로 일깨워주었다. 제자의 성근 말에 대구까지 맞춰서 잠자는 본성을 일깨워주는 스승의 가르침이 너무나 멋지다.

소년은 15세 때 스승이 직접 써준 글을 평생 어루만지며 61년 동안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감히 잃을까 염려하였다. 너무 만진 나머지 나중에는 종이가 너덜너덜해져 누더기가 다 되었다. 1854년에 다산을 성묘하러 온 황상이 집으로 돌아갈 때 헤어진 그 종이를 보고 아들 정학연이 붓으로 다시 써 주었다. 60여 년 전에 아버지가 당시 15살 제자에게 써 준 글을 후일에 아들이 다시 써 주니 정경이 참으로 아름답다. 제자는 스승의 첫 가르침인 그저 부지런히만 하라는 말씀을 평생 실천하고 있다. 여기에 아들도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보이는 아비의 가르침들을 잘 실천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갸륵하고 보기 좋은가.

스승과 제자와 부모 외에 스승의 자식에게까지 그 인연이 이어진다. 물론 다산이 적소에 자식을 불러 미진한 학문을 직접 가르쳤던 터라 황상과 아들과의 교분은 진작 이루어졌지만, 학문적 교감은 수십 년간 연이 이어지는 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이야말로 삶을 아름답게 이어주는 교분이요, 만남이 아니겠는가. 그 저간에는 모름지기 부지런 하라는 스승의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꾸준히 받든 제자의 성실함이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일에서도 배울 진대 우리는 황상의 사례에서 부지런해야 함을 깨닫는다. 자신을 일깨우고자 한다면 금년을 모름지기 부지런히 살아야 할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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