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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전 상당고 교장·교육학박사

어느 추운 겨울 날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아내가 다급하게 부른다. 여간해서 급한 목소리가 없던 사람이라 즉시 나가보니 차 시동이 안 걸린다며 강의 시간에 늦겠다고 발을 동동 구른다. 추운 날씨 때문에 배터리가 나갔음을 확인하고 내 차에 태워 대학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그래도 당신이 집에 있어서 다행이네'라며 나직하게 고마워하는 소리를 듣는 내 모양새는 어떤가. 벽난로에 땔감 옮길 때 쓰는 귀덮개 모자에 운동용 검정 오리털 파카와 무릎 툭 불거진 회색 기모바지요 신발은 아내가 홈쇼핑에서 구매하여 선물한 방한화이군. 완전 집에서 일할 때의 차림새인데 야단났다! 강의 동안 나는 대학 어느 구석에다 이 복식을 숨기고 있는 담.

늦지 않게 아내를 강의실 입구에 내려주고 나니 내 처신이 난감하다. 기왕지사 요기나 하려 식당에 들어가려다 사람들이 가득하여 도저히 안으로는 못 들어가겠다. 마침 로비에 의자와 식탁이 있다. 오늘은 온전히 나를 위한 자리라 여기자 마음이 약간 누그러진다.

로비에서 편히 먹기에는 중식이 좋을 듯하여 그 중 제일 값나가는 메뉴로 주문하였다. 외양이 이러니 보상차원에서라도 비싼 놈으로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는 식사 후에 그릇을 셀프 반납하나본데 도대체 위치를 모르겠다. 하는 수 없이 식당 안으로 들어가 퇴식구 위치를 물었는데 아뿔싸! 여기서 가장 먼 반대편 구석이란다. 이쪽과 저쪽은 끝에서 끝이요, 무려 100여 미터 되는 거리나 되는데 이 많은 식사 군중을 헤치고 가야 한다. 옆구리에 책 한권을 낀 채로 퇴식구로 걸어가노라니 하던 식사나 할 것이지 어이하여 나를 쳐다보는가· 구부정한 모습은 더 아닌 것 같아 목과 허리를 곧추세우고 발걸음을 크게 띄어 보무당당히 걸어가다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자 과연 학생들이 볼만 하겠다 싶어 웃음이 나온다. 옆구리에 책을 낀 노숙자 모습과 다름없다. 학생들은 구내식당에 어떻게 노숙자가 들어왔는가 하겠군.

나름 의연하게 식기를 반납하고는 표정을 점잖게 갈무리하고 로비에 앉아서, 가지고 간 『공자와 순자』를 읽으며 시간을 죽이기로 하였다. 일어서면 또 남의 이목을 받을까봐 소변까지 참고 두어 시간 몰두하니 점점 책속에 빠져들어 세상이 멀어진다. 어이하여 생존 시에 실패한 공자는 후세 천년 스승이 되었는데, 현실에서 성공한 순자는 사후에 인정도 못 받으며 그나마 법가로 그의 사상을 이은 진나라는 고작 이십 년에 망했을까 하는 명제로 전개되는 책을 쏠쏠히 읽다보니 어느 덧 300여쪽 분량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다.

드디어 강의가 끝날 시간이라 강의실 앞에서 대기하는데 도무지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 날은 추워져 다리부터 점차 시려온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오늘은 평소 차 안에 곧잘 두고 다니던 벤치코트도 없다. 하는 수 없이 스펀지 목 베게로 무릎을 감싸 추위를 막고 있는데 삼십 여분 뒤에야 아내가 나온다. 사정 급한 줄도 모르고 질문하는 학생에게 답하느라 늦었다는 말을 들으며 시동을 켜자 마음까지 따스해 진다.

집으로 오면서 아내가 다시 고맙다고 한다. 젊었을 때는 안 그러더니 심리학을 공부하는 때문인지 나이와 더불어 지혜가 늘어서 그런지는 모르나 고맙다는 말도 자주하여 대견하다. 오늘 주변 사람들에게 품위에 안 어울리는 눈총을 받았어도 아내에게 작으나마 도움을 주어 스스로 흐뭇하다.

앞으로는 기왕의 『도산서원 해설집』과 『시집』 외에 좀 더 두터운 책도 차에 싣고 다니리라. 예기치 않은 외출일지라도 의관을 정제하여 다른 사람의 이목 집중을 받지 않도록 유념하리라. 시일이 어느 정도 지났건만 다시 생각해도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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