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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7.04.23 14:08:12
  • 최종수정2017.04.23 17:25:45

김병규

상당고 교장·교육학 박사

퇴계선생의 제자 가운데 순천사람인 산천재 이함형이라는 분이 있었다. 멀리 안동까지 와서 선생에게 배우는 고제였으나 부부간 금슬이 안 좋아 계속 살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가 공부를 마치고 하직인사를 드리자 퇴계는 서신 한 장을 써 주며 집에 가서 읽으라 하였다. 그런데 길가는 도중이나 도착한 후가 아니라 반드시 도착 직전 집 사립문 앞에서 읽어야 한다는 다짐이셨다. 제자는 궁금함을 눌러 참고 스승의 말씀대로 문 앞에서 선생의 편지를 읽었다. 무슨 이유로 선생은 하필 사립문 앞을 강조하였을까.

무릇 바깥세상과 가정의 경계선은 바로 사립문이다. 사립문은 바깥세상과의 단절이요, 자기만의 오롯한 영역 표시이다. 가장에게는 바깥 세력으로부터 내 가정을 지키는 최후의 방어선이기도 하다. 사실 말이 끈 하나 둘러주면 내부로 인식하여 안심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문창호지 한 겹으로 산짐승의 공포와 밤의 두려움을 차단한다. 사찰의 산문이 바로 가정의 사립문이요 건물의 현관이다. 산문을 들어서며 마음을 바로 하는 것처럼 집안으로 들어갈 때는 사립문 앞에서 말에서 내리고 외부와 싸우던 마음을 비운다. 말을 탄 채로 집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은 무뢰한이요, 칼을 소지한 채 내당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불한당이다. 이렇듯 세상의 모든 권세와 위엄이나 명예도 일단 사립문 앞에서는 버려야 한다.

오늘날 가정 붕괴의 원인 중 하나가 욕망 실은 말과 애증 담은 칼을 지닌 채 집으로 들어가기 때문인 듯하다. 바깥 세파를 가정 안까지 끌고 들어가면 때와 장소도 분별 못하는 숙맥이다. 가정은 평화와 화해를 실천하는 곳이요 소우주인 인간이 우주로 나갈 바탕을 이루는 곳이므로 큰 소리가 나서는 안 되고, 다툼도 화해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가장의 면이 서고, 가족은 사회에서도 슬기롭게 처신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거경궁리를 실행하는 숭고한 수도장이다. 바깥세상을 단절하는 뜻은 가정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함이니 가족 모두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

집과 건물에 사람들이 드나드는 문을 玄關 또는 현관문이라 부른다. 玄은 검다는 의미이지만 검을 黑과는 아주 달라서 그윽이 멀다는 뜻이 있다. 이는 도를 깨달아 깊고 현묘한 이치에 듦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현관의 어의적 의미는 '깊고 묘한 이치에 드는 관문'이요, 보통 참선으로 드는 어귀를 이르고 있다. 우리가 상시 출입하는 현관을 드나들 때 도를 깨닫기 위하여 자기 자신의 마음가짐을 잘 추스려야 문의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집을 올바로 드나드는 것이다. 집은 마음을 닦고 몸을 바로 하여 격물치지의 심정으로 자신을 수양하는 곳이지 남이 보지 않는다 해서 방종한 태도로 삶과 시간을 낭비하라는 장소가 아니다. 사립문 앞을 강조한 선생의 깊은 뜻이 여기에 있다.

한편 이함형은 스승이 권씨 부인을 정상인에 모자람에도 공경 대우하는 평소 태도와, 사립문 앞에서 읽은 편지 글에 감동하여 그날 집으로 들어간 뒤부터는 전처럼 부인을 박대하지 않고 손님처럼 대하여 가정이 화목해졌다 한다. 그동안 마음 고생이 심했던 이함형의 부인은 퇴계가 죽자 부모 상을 당한 것처럼 3년 동안 상복을 입어 은공에 보답했다 하니 이 또한 아름답다.

無勞別修道卽此是玄關(무로별수도 즉차시현관 ; 수도하고자 따로 애 쓸 것 없나니, 여기 이 대나무 집이 바로 현관일세.) <백거이白居易 숙죽각宿竹閣>

현관을 열때는 법계의 문을 여는 듯 공경하는 자세로 드나들어야 한다. 명목의 현관을 지나며 마음으로도 나의 현관을 열어 들어가면 좋겠다. 4살 된 손녀에게'사랑스러운 우리 지온이는 어디에서 왔지·'라 물으면 '현관에서 왔어'라 하니 이야말로 생이지지(生而知之)의 답이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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