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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상당고 교장

대학 때 최치원 전에서 지식인으로 난세에 처하는 어려움을 배우고, '시대의 변혁기에 지식인들은 어떻게 처신을 했을까?'로 화두(話頭)가 되어 학위논문을 혜강 최한기의 경장사상으로 잡게 되었다. 실학자들의 책 바다에서 헤엄치다 익사할 뻔 했지만 그래도 공부는 해 봤다.

다산수련원의 공직자 청렴 FUSO연수로 강진 가는 길에 '정약용의 남도유배길' 표지판이 보인다. 다산이 피눈물과 탄식으로 걷던 길을 다른 사람들은 웃음으로 걷겠구나. 청자의 비취색으로 표현된다는 강진 앞바다의 쪽빛 물결과 남빛 하늘 대신에 월출산을 글어 안으며 피어오르는 안개와 추심(秋心) 어린 비가 반기는데 이것도 나름 흥취가 있다. 역사는 상상적 이해와 추체험으로 실감할 수 있으니 나도 그렇게 다산의 체취를 느껴 보리라.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신진기예 정약용이 서학쟁이로 유배형을 받게 된다. 왕이 조용히 불러 "너에 대한 주위의 원망이 자심하니 잠시 예봉을 피하려무나." 위로로 적소에 갔거늘 갑자기 붕어하니 망연자실했으리라. 신유박해 이후 천주교인들은 무부무군(無父無君)의 패륜아요 대역죄인일 뿐이다.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 강진에서 다행히 주모의 배려로 주막 곁방을 사의재라 명명하고 4년을 지냈다. '생각은 맑게, 용모는 장엄하게, 말은 과묵하게 그리고 행동은 중후하자!' 범인(凡人)들은 원망으로 밤을 지새우거나 절치부심 앙갚음 기회만 노릴 텐데 '이제야 겨를을 얻었다'며 학문에 정진하니 그 생각의 고매함을 알겠다.

초당에 가는 길은 내리는 비로 사위(四圍)가 촉촉하다. 서암 기둥에 기대니 두 마리 잉어가 살았던 천원지방형 못에 빗방울이 작은 동그라미를 만든다. 동암 마루에서는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자산도에 유배된 약전형을 그리워하였을 다산의 모습에 가슴이 아리다. 대개 중앙관료가 유배되면 지방 사또는 중앙과 연줄을 잡으려 나름 대접도 하고 침선과 객고 해소로 동기(童妓)를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산은 사학쟁이였으며 하필 현감까지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여 위리안치 신세라 어디 손님이 찾겠는가. 이러니 다산이 후일 만난 혜장과 초의는 망년심우(忘年心友)일 수밖에.

다산이 슬프게 바라봤을 초당 앞 바다를 뒤로 하고 백련사 길로 접어들었다. 지금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깊게 패여 나무뿌리가 드러났으나 옛 적에는 작은 오솔길이었겠지. 계룡산 중턱에서 신록은 방금 내린 빗방울을 머금고 빛나는데 멀리서 Paul Mauriat의 'Rain & Tears'가 들려 절묘한 배합이라고 감탄했던 기억이 우산을 때리는 비와 함께 떠오른다. 우인(友人)을 만나러 가는 다산의 심정은 어땠을까. 이제는 폐족이라 초연히 실학 관련 준론을 펼칠 생각에 휘적휘적 산길을 걸었으리라. 대화가 되는 스님과의 만남은 그간의 적적함 해소 이상의 따사로운 자리였겠지.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자리는 같이 함만으로도 즐거우니, 9증9포로 정제한 떡차는 화롯불 위 주전자에서 끓어 차향 가득한 방에서 침묵 속에 차만 마셔도 넉넉했겠고. 당시 대둔사에서는 초의를 유학 공부에 빠져 외객(外客)이 되었다고 비방하였으나 다산은 거문고에 능했던 사총 등 4명 승려 예술가의 예로서 초의의 마음을 다잡아 준다. 절친 이라 여긴 벗들에게서 칼날 벼린 시기를 당했기에 타인의 비방쯤이야 의연할 수 있겠지.

백련사 길을 빨갛게 물들였을 동백꽃잎과 흰 눈으로 덮였을 길을 상상하며 우리의 삶을 바꾸는 만남과 인연을 떠올린다. 지금 내게 소중하며, 내가 대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앞에 가는 노란 옷의 여인은 우산 쓰고 오르는 산길이 무척 힘든가보다. 그녀의 가쁜 숨소리에 구만리를 가던 생각이 다시 오르막 산길로 돌아온다. 어느덧 늙어버린 내 손이라도 보시하여 바튼 숨이라도 다독여 줄까나. 그새 백련(白蓮)에서 백연(百緣·많은 인연)으로 지평이 넓어졌네. 어허! 내게 속한 모든 인연을 사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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