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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상당고 교장

논산 신병 교육 후에 나는 뜻밖으로 통신학교로 명령받았다. 집에서는 전기도 못 다루었는데 통신병이라니. 나의 병과는 무선통신병으로 CW병이라고도 하며 교육기간도 신병 훈련 기간보다 3-4배나 더 길다. CW병은 모르스로 송·수신하여 통하는 임무인데 이 모르스 신호가 초보자의 귀에는 여간 헷갈리는 것이 아니다. 14주 동안이나 교육받는 이유가 있었다. 동기 교육병들이 "내가 왜 이럴까. 군대 와서 또라이 되었나봐!"라고 한탄도 하고, 모르스 신호를 받다보면 머리가 실타래처럼 엉킨 듯 멍청해진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통신학교 화장실에서도 병사들의 주특기가 손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소변보려 바지춤 잡고 남은 한손으로 기수병은 손을 위 아래로 크게 흔들고, CW병은 손목을 열심히 털고, 텔레타이프병은 손가락을 움직인다. 마음같이 안 되니 소변보는 그 짧은 시간도 연습이 아쉽다. 이 결과 처음에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으로 헷갈리던 신호가 교육 후반기가 되면 거의 가면 상태에서도 잘 들린다. 연습이 이리 무섭다.

제대 말년에 연대 본부에서 소백산 연화봉으로 파견을 가란다. 교련으로 단축 6개월을 받게 되어 다른 본부병사들이 심적 타격을 받지 않도록 차라리 산에 가 있으란다. 모든 통신병이 선망하는 소백산 파견을 얼떨결에 내가 가게 되었다. 소백산에서의 내 임무는 통신학교 졸업식 때 최우수 상장을 받은 모르스 발휘도 아니고, 자대에 와서 "통신보안 00입니다."라고 잠꼬대까지 할 정도로 연습하여 익힌 교환업무도 아니다. 단지 사단 본부와 다른 부대와의 통신에 즉시 응답할 수 있도록 주·야간 P-77 무전기만 대기하면 된다. 응답을 제 때에 못하면 영창 가는 거고.

소백산 통신대는 현재 무인 통신소로 운영되지만 당시에는 병사들이 주둔하고 있었다. 10월 말의 산 정상은 벌써 눈이 소복하다. 화장실도 산길에 쳐 놓은 줄을 잡고 가야지 자칫 강풍에 산 아래로 쳐 박히면 다음 해 봄에 눈이 녹고서야 찾을 수 있단다. 화장실에서는 얼어 솟아오른 누군가의 용변 덩어리에 찔리지 않으려면 매화틀에서 엉덩이를 번쩍 쳐들고 용무를 봐야 한다. 그뿐이랴! 막사 귀퉁이에서 소변을 볼 때도 세찬 골바람 때문에 나의 오줌줄기로 세수하고 옷에 뒤집어쓰기 일쑤다. 그래서 바람소리를 귓전에 들으면 재빨리 오줌 끊는 법도 배워 익숙해진 어느 날 아침이었다. 간밤 불침번 병사가 "김상병님! 정말 놀라워요. 어떻게 자면서도 무전기를 받을 수 있어요·"라 묻는다. 그가 보니, 한밤중에 다른 곳을 호출할 때는 자고 있다가 내가 대기하는 연화봉을 부르면 "아 여기 000 이상. 감도 양호 등등"을 뇌이곤 다시 곤히 자더란다. 무전기는 송수화기의 키를 누르면 송신되고 놓아야 수신되는데 분명 자는 것 같은데도 그조차 틀리지 않고 잡고 나가니 너무나 신기하단다. 이게 긴장된 연습의 결과다. 연습이 숙달되어 눈을 뜨던 감고 잠을 자던 무의식적으로 행동을 할 수 있는 거다.

요즘 학생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연습의 의미를 잘 모르는 듯하여 안타깝다. 긴장된 연습을 통해 습관처럼 몸에 익으면 운동 시합에서 우승한 어느 선수처럼 '그냥 즐기기만 했어요! '라 말할 수 있을 텐데 그 단계가 너무 멀다. 안하던 공부가 무섭고, 새로운 도전이 겁난다. 공부에 지레 겁을 먹는 학생들이 태반인데 모처럼 작심한 소수의 공부하는 학생들도 성과를 이루기는커녕 쓰러지기까지 한다. 몸은 옛날을 기억하는 습성이 있고, 머리는 편한 것을 추구한다. 그러니 목표를 위하여 자신을 혹독히 다루지는 못할 지언정 새로운 달성을 위하여 자신을 최촉이라도 하면 좋겠다.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말이 머리에는 있되 몸이 안 따르니 보는 사람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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