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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교육학 박사

 도산서원에 비가 내리니 그동안의 감개가 가만히 듣는 처마 빗물에 절로 묻어난다. 무술 추향 재유사 망기를 받은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6개월이 지났다. 2월에 중국 공항에서 이사장님과 원장님께 재유사 관련 언질을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으로 받고, 3월 초순 망보는 목욕재계하고 도산서원을 향해 사은숙배를 올린 뒤에 개봉을 했다. 예전 같으면 문중의 영예로 여길 '망보 아뢰오' 라는 외침이 동네를 들썩였겠지만 우편으로 조용히 받을망정 의미는 매한가지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사당에 인사드리는 알묘는 선생 사후 한 번도 거르지 않아 양란과 6·25동란 때도 지켰다 하니 후학들의 성의가 놀랍다. 서원에 들어가는 입재 날에 주차장에서 민자건과 도포로 의관정제는 했는데 마주치는 관광객들 보기가 어색해 고개 숙이고 걸었던 기억도 새롭다. 첫날밤은 11시까지 강독유사 권 교수의 강의 하에 선생 문집과 시를 공부하는데 이따금씩 상유사이신 원장님이 참석해 해박한 역사 지식을 풀어내시니 좌중이 후련하다. 다음 날 새벽 4시 반에 기상해 유건까지 쓰고 정좌해 목소리 낭랑하게 백록동규를 성독함에 옆 사람 목청에 더 신경이 가서 우습지만 본격적으로 유생의 모습으로 접어드는 듯 흐뭇했다. 성독 후에는 상덕사에 들어가 노련한 별유사님께 봉향 절차를 배우는데 어쭙잖은 태도가 그야말로 절에 간 색시와 진배없다. 어디 그뿐이랴. 3월의 도산 밤이 어찌나 춥던지 동기 재유사 한분은 공부가 끝난 뒤 취침 전 양치질을 하는데 머리꼭대기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와 주위 사람을 포복절도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새 계절이 두 번 바뀌어 한 여름 땀으로 소매를 적셨던 모시 한복에 스며드는 서늘한 가을 기운은 도포가 막아주고 있다. 박약재 마루에 앉아 있으려니 이제껏 선생의 유풍을 온 몸으로 쐬며 6개월 동안을 그 향기에 빠져 살다가 아직 준비도 안 된 학생임에도 하산을 명받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본디 재유사는 서원의 행·재정을 담당하는 소임이지만 내게는 사숙에서 사사의 단계로 선생을 모시는 것이요, 물론 이루진 못했지만 이참에 선생의 글도 읽으며 더불어 시구도 많이 외우려는 의중이었다.

 추향은 특별히 2박 3일의 입재로 제사 준비를 하며 둘째 날 진도문에서 의관을 갖추고 들어서는 유생들을 읍례로 맞이했다. 나도 6개월 지난 이제야 맵씨나게 옷고름과 댓님을 매는데 후일 저렇게 단정한 외양에 감회어린 표정이겠다. 선배 재유사들이 한걸음 뗄 때마다 예전 추억을 되새기는 모습이 남의 일이 아니다. 열댓 명을 수용하는 서원 양재로는 부족해 유생 일부는 농운정사에 가서 자야 한단다. 서애 유성룡이 오래 묵었다는 농운정사에는 농암 자제와 선생의 고제 월천과 학봉선생도 주무셨던 곳이라. 여기서 다른 유생들과 침상을 맞대고 밤새도록 자세히 이야기를 해 본다면 이것도 선생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겠다. 다음 향사 때에는 농운정사에서 잘 기회도 만들어 봐야겠다. 자면서 선생 제자의 숨결을 느껴본다면 그도 참 좋은 일이리라.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우산을 쓰고 서원 그윽한 곳까지 걸어 보았다. 비로 질척한 섬돌에 도포 자락이 끌리지 않도록 여미고 걷는데 뜰 위에 구르는 낙엽에서 가을이 묻어난다. 매화원을 지나 서당 마루에서 유정문 넘어 시사단 쪽을 바라보았다. 낙강에 물이 가득해 반타석은 깊이 잠겨있고 낚시용 뗏목배가 여러 척 단 주변을 두둥실 지키고 있다. 마치는 마당에 반드시 보름달 어린 정경을 가슴에 새기렸더니 우중이라 이미 글렀네. 휘영청 밝은 밤에 탁영담과 주변 풍광을 볼 기회는 또 언제런가. 아쉽지만 가을 하늘 밝은 달은 청주 집 주변의 영운천에 반영된 것으로 대신할 밖에.

 내 일생에 기억될 아름다운 추억에 감사하며 바야흐로 선생 글을 읽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가르침은 어찌 얻을까 궁리가 된다. 기왕이면 선생이 말년에 손 가까이에 두셨던 '심경(心經)'으로 마음공부를 따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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