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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교육학 박사

단양 잔도에 있다면서 보낸 지인의 사진에 습정투한이라는 단구와 '고요함을 익히고 한가로움을 찾는다'는 풀이가 있다. 직역으로는 '고요함을 익히고 한가로움을 훔친다'이나 훔친다는 말보다 찾는다는 말이 더 살갑겠다. 직장 다닐 때보다도 요즘 더 바쁘게 산다는 집사람의 핀잔을 듣던 차에 너무 바쁘게 살지 말라는 충고인 듯 하여 배려가 고맙다.

퇴임을 한 달 앞 둔 친구가 불안하다며 조언을 구하는 밥자리를 마련하겠단다. 호수가 바라보이는 식당에서 보글보글 끓는 매운탕을 사이에 두고 6개월여 퇴임 경험의 변을 풀었다. '해야만 하는 일을 하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고, 만나야 하는 사람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보게 되며, 메인 시간을 잘 활용해야겠더라'는 요지였다. 그러면서 하고 싶은 일을 선택과 집중으로 정리하지 않으면 그동안 못한 아쉬움을 해소하려다 자칫 백수가 과로사 한다는 말을 입증할 수도 있으리란 공갈도 덧붙였다. 아무리 친구지만 퇴임 선배인 나를 어찌 따라올 것인가. 그러니 내 말을 귀담아 들을 밖에.

40년만의 기록적인 한파가 맹위를 떨쳤던 겨우내 집안 온도가 한층 더 내려가는 1층 거실에서는 조반 후 차만 마시고 햇볕 담뿍 들어오는 2층에서 시간을 보냈다. 대금을 잡기도 하고 중학교 2학년 때 나에게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최신 본으로 다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당시 초등학교 교사이셨던 집안 할아버지가 6학년 때 빌려준 책이 『호머』와 『플루타르크 영웅전』이었다. 그 덕에 세계사에 대한 흥미가 생겨 급기야 역사를 전공하게 되었음에 새삼 감사를 드렸다. 사람이 살면서 문사철(文史哲) 세 가지에 집중하면 아쉬움이 없다 했거늘 역사를 통해 접근하고 있으니 이 또한 고맙다. 아울러 그동안 잡는 시늉만 했지 숨도 많이 넣어주지 못한 대금에게 깜량껏 김을 넣어주니 이제사 화답해 주는 듯 하여 사랑스럽다. 대금정악 인간문화재 금정 김응서 선생이 생전에 대금을 짚어주며 대나무 한 마디만큼 불면 한 마디의 내공이 쌓이니 소리를 좋게 하려면 부는 것 이외의 왕도는 없다고 누누이 하셨던 말씀을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한파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한파관련 안전문자가 울려도 햇볕 밝은 방에서 대금과 독서에 정을 쏟는 나는 홀로 여유롭고 따스하다.

마침 선배가 요즘 어찌 지내는가 묻기에 습정투한을 원용하여 '고요함을 즐기고 한가로움을 익히고 있습니다.(요정습한-樂靜習閑)'로 답을 드리니 우습다. 고요함을 즐기고 한가롭게 된 형편을 몸에 익힌다는 말이 내 깐에는 참으로 재치 있는 답이다.

마음이 한가롭지 못하면 고요함을 괴로움으로 인식하게 되고 한가로움을 한껏 포장하여 심심하다고 말은 하지만 속내는 외롭고 쓸쓸한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구망투한(求忙偸閑-바쁨을 구하며 한가로움을 훔친다)에 익숙해 있다. 내가 만약 술을 즐겼더라면 심신을 황폐하게 하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마음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우나 중요하니 이 마음 내려놓기를 어떻게 수련해야 할 것인가. 들뜬 상태로는 어드레스를 잘 했다 손 골프공도 못 띄우고, 대금 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함을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 내려놓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짬을 내어 정심투호나 활 내기로 집중을 연습했던 것이니 이런 것이 경(敬)한 자세로 처하는 일환이요 자족하는 처세였다.

그런데 습정투한은 직에 있을 때의 망중한의 다른 의미라, 이를 요정습한으로 바꿔도 미진하니 차라리 완정서한(玩靜棲閑)이 낫겠다. 고요함을 차분히 즐기며 한가롭게 사는 것이 습정투한보다야 한결 더 편안하고 내 격에 맞지 않겠나. 이제 누가 어찌 사느냐 물으면 이태백처럼 웃으며 답하지 않아도 마음이 한가로우면 정말 좋겠다. 마음이 한가로우니 만사가 여유롭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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