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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규

상당고 교장

출근하려 차를 보니 차창 앞 유리에 가을안개가 한껏 아롱져 있다. 정녕 가을이구나! 시동을 걸자 차는 가르릉거리며 밤새 떨어져 있던 주인을 반긴다. 이제 출발. 신호등 없는 교차로 왼쪽 편 차가 도시 멈출 기미가 없다. 자세히 보니 봉고차 운전사가 허이연 이빨까지 보이며 기세 등등 다가선다. 에라! 저놈 먼저 가게 해야 세상이 편하리라 여기며 기다려준다. 어렸을 적 엄마가 '지는 게 이기는 거다!'라 가르쳐서 그런지 양보가 더 편한 걸 어쩌리.

신호대기하며 오늘 할 일을 마음속으로 정리한다. 엊그제 실시한 모의고사 결과 처리도 궁금하고, 신년도 교육과정 개정 작업은 어느 정도 진도가 나갔는지도 확인을 해야겠으며, 요즘 너무 적조했던 사람들에게 안부 전화라도 하리라 마음먹는다. 그 사람이 전화를 안 하면 내가 먼저 하면 되리라. 언뜻 옆차를 보니 아줌마가 운전대 앞에서 눈썹 그리느라 한창이다. 저렇게 차 안에서 눈썹을 그려도 되니 자타가 공인하는 미모이거나 아니면 외모를 포기를 한 수준일까. 미인은 백발을 안 보이고, 아름다운 여인은 화장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지 않는다는데 빨간 불 몇 초를 요긴하게 쓰는 것을 보니 아무튼 자투리 시간 활용에는 이골이 났겠지.

다시 파란불이 들어와 직진 신호를 받으며 좌회전을 한다. 길옆에 있는 중학생 또래는 길을 가면서 이야기에 열중하고 있다. 혹시 저 학생도 요즘 내가 읽고 있는 조정래 작가의 '풀꽃도 꽃이다'를 친구에게 설명하는 중일까. 아니면 다른 친구의 뒷담화를 하는 것일까. 얼마 전 1학년 여학생이 찾아와 눈물에 콧물이 뒤범벅되어 속내를 토로한 것이 구내식당에서 점심 먹을 때 옆에 아무도 앉지 않는다는 거였지. 그래서 그 학생은 죽고 싶다고도 했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는 것이 좋겠다! 하소연하여 대화가 끝난 뒤에 학교 복도에 '몸이 아프면 보건실로 마음이 아프면 교장실로'라는 안내판을 붙이기도 했지. 앞에 가는 차에서 피다 만 담배를 쥔 손이 나온다. 필경 저 사람은 담배꽁초를 길거리에 버리겠구나 생각하니 슬며시 불편해진다. 이러다간 담배 예절도 어디선가 가르쳐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차창 밖으로 침 한 무더기 뱉는 사람보다는 낫다. 그런 사람을 보면 하루가 불쾌했는데.

아! 시내버스 기다리는 고등학생 하나가 책을 보고 있구나. 요즘 횡단보도를 건너면서도 주변 차를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손전화기에 열중한 모습에 걱정될 때가 많은데 책 보는 사람도 있긴 하네. 우리나라 지하철에서는 모든 사람이 고개 숙인 통에 휴대폰에 걸쳐진 머리만 보면서 이웃나라 지하철에서 신문이나 책을 읽고 있는 모습과 자연 대비하게 되거늘, 저런 학생들이 부디 성공하여 독서한 보람을 얻게 되면 좋겠다.

길 옆 나무에 물이 들어감을 보니 이제 바야흐로 만산홍엽이겠다. 문득 당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산행(山行)' 시가 떠오른다.

멀리 가을산 위로 돌길이 비껴 있고, 흰 구름 이는 곳에 인가가 보이네. 마차를 세워 놓고 늦단풍을 즐기는데, 서리 맞은 단풍이 2월의 꽃보다 붉구나.

이제 차를 동쪽 길로 향하니 아까 다 치우지 못한 차창 밖 물방울이 햇볕을 받아 보석처럼 영롱하다. 보석의 가치는 희소성, 견고성, 불변성, 휴대성, 전통성, 자산가치성에 있다지만 나의 마음눈에 따라 안목에 따라 유리창의 물방울 하나도 보석이 될 수도 있겠다. 송나라 때 육유라는 시인이 '몽당비 볼품없어도 내게는 보배라'하였듯 보석도 내 눈에 좋으면 보석인거다. 내가 마음을 좋게 갖고 주변 사람을 보석처럼 대하면 그 사람들도 나를 보석으로 대할테지. 그것이 어려우면 일부러 콩깍지라도 쓰고 주변을 보석으로 대하면 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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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