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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6.24 16:01:51
  • 최종수정2021.06.24 16:01:51

지명순

(사)전통음식문화원 찬선 원장/유원대학교 호텔외식조리학과 교수

조선왕조 궁중 주방상궁의 전수 방법은 이랬다.

나이 열 세 살이 되어서 노상궁의 추천으로 입궁해 주방에 소속이 되면 일단 중간 나이 정도의 스승 상궁을 지정받아 교육을 받으면서 키워진다. 십 년 동안 주방의 허드렛일 즉 재료 다듬기, 설거지, 잔심부름 등을 하며 상궁의 보조 역할을 한다. 스물 세 살이 되면 관례를 치르게 되는데 자기 생가와는 상관없이 시집가는 것처럼 스승이 제자에게 대례복을 입혀 아주 호사스럽게 차린다. 그리고는 같은 해에 입궁한 나인들이 모두 모여서 대전과 중전께 큰절을 올리면 그것으로 시집간 사람이 되는 법이고 상궁이 되는 것이다.

상궁이 되면 본격적으로 임금님 수라상에 올릴 음식을 만들게 되는데 십년이 또 지나 서른 세 살이 되어야 직책을 받게 된다. 그래야 자기 밑에 열 세 살짜리 새로 들어온 아기 나인을 받아 가르치며 거느리고 살게 된다. 꼬박 이십년의 세월을 궁에서 배우고 익혀야 그 품위에 따라 첩지라는 장식물을 가르마 중간에 얹어 쪽을 찔 때 넣는다.

전국에서 가장 좋은 재료가 궁에 들어오고 오랜 기간 연마한 솜씨로 온갖 정성을 드려 차린 수라상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라 맛은 물론이도 섬세하고 정교하기가 그지없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다과를 준비하던 생과방(生果房)의 상궁 솜씨가 단연코 으뜸이었다. '반찬등속'에도 궁중음식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데 '백편'이 바로 그것이다. 백편은 궁중 떡으로 곱게 빻은 멥쌀가루에 설탕을 섞어 가루를 얇게 켜를 지어 안치고 매 켜마다 썬 대추·밤·석이·잣 등으로 색스럽게 고명을 얹어 찌는 떡이다.
『반찬등속(饌饍繕冊)』 원문에는 '백편' 만드는 방법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백편은 시루에다가 떡켜를 놓되 여늬 백지를 깔고 한 켜 놓고 석이와 잣과 대추를 오려 놓아가며 떡켜를 놓아서 다 한 후에 쪄라"

백편은 백설기 만드는 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약 2cm 정도로 쌀가루를 안치고 그 위에 기름 바른 백지를 올려 켜를 만들고 고명을 올린다는 것이다. 고명의 종류도 석이, 잣과 대추를 사용해 사치스러움을 더했다. 백편이 혼례·회갑연·제례 등 잔치 때에 만드는 고급스러운 떡이기 때문이다. 조리서마다 조금씩 만드는 방법이 달라서 물을 내리지 않거나 물·설탕물·소금물을 조금 내렸고, 찹쌀가루를 조금 넣으면 더 좋다고 하였다.

궁중의 음식이 어떻게 민가에 전해졌을까? 그 이유는 왕족이 왕족끼리가 아닌 사대부와 혼인을 하는 제도 때문이다. 혼인을 통해 궁중의 생활양식을 비롯한 모든 문화가 사대부가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다. 궁중에서의 잔치는 규모가 엄청나서 음식을 고이는 높이도 한자 한치나 되고, 한번에 40가지가 넘는 음식을 차린다. 잔치가 끝나면 음식을 친척과 인척, 사대부가에 고루 하사는데 이를 사송이라고 하였다.

또 궁 밖에서는 진상이라는 격식으로 궁중에 음식이나 식품들을 들여보내는 일도 많이 있었다. 여기서 궁중과 반가 사이에 음식의 교류가 생겨 조리법을 서로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 궁궐의 담장이 높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지은 진주 강씨 집안도 궁중과 연관성이 깊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반찬등속에는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실타래를 풀어 다시 씨줄과 날줄을 정교하게 엮어 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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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반찬등속 떡 이야기(5)

궁궐 담장을 넘은 떡 '백편'

조선왕조 궁중 주방상궁의 전수 방법은 이랬다.

나이 열 세 살이 되어서 노상궁의 추천으로 입궁해 주방에 소속이 되면 일단 중간 나이 정도의 스승 상궁을 지정받아 교육을 받으면서 키워진다. 십 년 동안 주방의 허드렛일 즉 재료 다듬기, 설거지, 잔심부름 등을 하며 상궁의 보조 역할을 한다. 스물 세 살이 되면 관례를 치르게 되는데 자기 생가와는 상관없이 시집가는 것처럼 스승이 제자에게 대례복을 입혀 아주 호사스럽게 차린다. 그리고는 같은 해에 입궁한 나인들이 모두 모여서 대전과 중전께 큰절을 올리면 그것으로 시집간 사람이 되는 법이고 상궁이 되는 것이다.

상궁이 되면 본격적으로 임금님 수라상에 올릴 음식을 만들게 되는데 십년이 또 지나 서른 세 살이 되어야 직책을 받게 된다. 그래야 자기 밑에 열 세 살짜리 새로 들어온 아기 나인을 받아 가르치며 거느리고 살게 된다. 꼬박 이십년의 세월을 궁에서 배우고 익혀야 그 품위에 따라 첩지라는 장식물을 가르마 중간에 얹어 쪽을 찔 때 넣는다.

전국에서 가장 좋은 재료가 궁에 들어오고 오랜 기간 연마한 솜씨로 온갖 정성을 드려 차린 수라상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라 맛은 물론이도 섬세하고 정교하기가 그지없었을 것이다. 그 중에서도 다과를 준비하던 생과방(生果房)의 상궁 솜씨가 단연코 으뜸이었다. '반찬등속'에도 궁중음식의 흔적이 많이 보이는데 '백편'이 바로 그것이다. 백편은 궁중 떡으로 곱게 빻은 멥쌀가루에 설탕을 섞어 가루를 얇게 켜를 지어 안치고 매 켜마다 썬 대추·밤·석이·잣 등으로 색스럽게 고명을 얹어 찌는 떡이다.

『반찬등속(饌饍繕冊)』 원문에는 '백편' 만드는 방법이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백편은 시루에다가 떡켜를 놓되 여늬 백지를 깔고 한 켜 놓고 석이와 잣과 대추를 오려 놓아가며 떡켜를 놓아서 다 한 후에 쪄라"

백편은 백설기 만드는 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손가락 한 마디만큼 약 2cm 정도로 쌀가루를 안치고 그 위에 기름 바른 백지를 올려 켜를 만들고 고명을 올린다는 것이다. 고명의 종류도 석이, 잣과 대추를 사용해 사치스러움을 더했다. 백편이 혼례·회갑연·제례 등 잔치 때에 만드는 고급스러운 떡이기 때문이다. 조리서마다 조금씩 만드는 방법이 달라서 물을 내리지 않거나 물·설탕물·소금물을 조금 내렸고, 찹쌀가루를 조금 넣으면 더 좋다고 하였다.

궁중의 음식이 어떻게 민가에 전해졌을까? 그 이유는 왕족이 왕족끼리가 아닌 사대부와 혼인을 하는 제도 때문이다. 혼인을 통해 궁중의 생활양식을 비롯한 모든 문화가 사대부가로 자연스럽게 흐르게 된다. 궁중에서의 잔치는 규모가 엄청나서 음식을 고이는 높이도 한자 한치나 되고, 한번에 40가지가 넘는 음식을 차린다. 잔치가 끝나면 음식을 친척과 인척, 사대부가에 고루 하사는데 이를 사송이라고 하였다.

또 궁 밖에서는 진상이라는 격식으로 궁중에 음식이나 식품들을 들여보내는 일도 많이 있었다. 여기서 궁중과 반가 사이에 음식의 교류가 생겨 조리법을 서로 배우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니 궁궐의 담장이 높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지은 진주 강씨 집안도 궁중과 연관성이 깊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반찬등속에는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이 숨어 있다. 아직 풀리지 않은 실타래를 풀어 다시 씨줄과 날줄을 정교하게 엮어 보다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다.



지명순 교수(조리학 박사, 한의학 박사)

유원대학교 호텔외식조리학과 교수

사)전통음식문화원 찬선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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