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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보영

충북여성문인협회장

반갑고 정겨운 글동무가 찾아왔다. 며칠 전 마실 오겠다고 기별을 넣더니 주전부리거리를 들고 들어선다. 커다란 양푼에 식은 밥과 나물을 넣고 썩썩 비벼서 같이 먹어도 흉허물이 없는 글밭을 함께 가꾸어가는 벗이다. 그런데 오늘따라 매장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 그의 손에 들려진 주전부리도, 쓴 차 한 잔도 나누지 못한 채 돌려보내고 말았다. 민망하고 민망한 일이다. 그러나 입맛도 다시지 못하고 돌아가면서도 분주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우리 부부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가 던진 마실이란 어휘가 따듯한 울림이 되어 가슴 속에서 맴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정겨운 말이다. 이 말은 이웃에 마을간다는 말의 북한어로 강원도나 충청도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언이며 예스러움을 간직한 어휘다. 우리네 주거 형태가 바뀌고 삶의 모습이 달라지다 보니 기억 저편으로 살아진 지 오래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전의 마실 풍경이 특별히 기별을 넣지 않아도, 때와 장소를 정하지 않아도, 가까운 이웃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것이었다면 요즈음은 이곳저곳에 흩어져 사는 이들이 서로서로 연락해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에 모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전에 마실 풍경에서는 사람냄새가 났었다. 마실 가려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지 않아도 되었다. 특별한 장소가 없어도 괜찮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 정다운 이웃들이 한자리에 모여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자리면 되었다. 여름날 저녁이면 이웃의 마당에 멍석이 깔리고 그 옆에는 모깃불이 타고 있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연기 속을 휘돌며 퍼지는 쑥 향은 고단한 하루를 살아 내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이런저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는 소통의 장이 되었기에 특별히 소통을 부르짖지 않아도 되었다.

그 자리에는 으레 밤하늘의 별들도 함께였다.

마실가는 이들의 손에는 주전부리거리가 들려 있었다. 먹을거리는 계절에 따라 달랐다. 여름엔 알이 잘 백인 옥수수나 삶은 감자, 아니면 못생긴 개똥참외 같은 것들이었고, 겨울철엔 구덩이에 저장해 두었던 무나 배추 뿌리 같은 것들이 주를 이루었다. 어쩌다 이웃집에 기구라도 든 다음 날이면 남은 제사음식들로 입안이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그중에도 들기름을 듬뿍 두르고 번철에 지져낸 누름적 가장자리(제상에 올리기 위해 정사각형으로 잘라내고 난 자투리)는 참으로 구수하고 감칠맛이 났었다. 그뿐인가. 가을이 깊어지면 무탈하게 한 해를 보내는 것에, 주신 분복대로 오곡을 추수할 수 있었음에 감사해서 집집이 갈 떡이란 것을 해 이웃들과 나누었고 그럴 때면 곱게 빻은 햅쌀 가루에 통팥을 듬뿍 얹은 팥 시루떡이 있어 더욱 풍성한 자리가 되곤 했다.

지금의 우리네 삶을 돌아본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거리낌 없이 밀치고 들어갈 사립문은 없고 굳게 닻인 철 대문만이 있을 뿐이다. 가볍게 마실 갈만한 곳은 거의 없다. 문명의 이기가 넘쳐나는 바람에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가 실종되어가고 있는 안타까운 시대를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이 기계와 소통하다 보니 소통의 부재로 바른 인간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고 불협화음이 빚어지고 있다. 마음의 빗장을 굳게 닫고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보려 한다. 수많은 인파를 헤집고 다니면서도 사무치는 외로움에 몸을 떨기 일쑤다.

달빛이 낭자한 밤이다. 텅 비어버려 남루했던 들녘은 자우룩이 내려앉은 눈꽃들로 하여 시리도록 아름답다. 오늘 같은 밤엔 달빛고운 눈길을 걸어 마실가고 싶다. 쌓인 눈밭을 헤집고 가느라 발등상에 묻은 눈일랑 정다운 이의 집 댓돌 위에 탁탁 털어놓고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그의 방문을 밀치고 들어가고 싶다. 저녁 답에 군불을 때고 담아다 놓은 화롯불에 밤을 굽느라 부젓가락으로 화롯불을 다독이던 그가 방문을 열고 내다보면서 '발소리를 듣고 너인 줄 알았다.'며 아랫목을 내어주는 그런 마실을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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