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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보영

충북여성문인협회장

며칠 전 은행에 볼 일이 있어 들렸을 때에 있었던 일이다. 갑자기 창구 옆 복도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이 든 노인과 젊은 여인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 진 것 같았다. 무엇인가 서로의 마음을 꽤나 많이 상하게 했는지 오가는 어투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어찌나 큰 소리로 떠드는지 그들이 웨 치는 소리가 은행 안까지 들렸다. 피차에 이런 말은 안 했으면 좋을 성 싶은 욕설까지 오가고 있다. "이X아! 너 같은 며느리 얻을까봐 걱정이다."라고 외치는 노인에게 젊은 여인도 같은 내용의 말로 대거리를 하고 난 뒤에야 그 다툼은 끝이 났다.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그렇게 완악하게 했는지 몰라도 과연 그래야만 했을까싶어 여러 날을 두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다툰 당사자들도 서로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어 버렸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해 버렸으니 아마도 두 사람 모두의 가슴에 오랫동안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 있으리라.

우리네 이웃들의 살아가던 옛 모습이 떠오른다. 고즈넉해 보이지만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정겹고 어둠이 내리는 밤이면 야트막한 토담위에 피어 있는 호박꽃 위를 나는 반딧불이의 춤사위가 눈부셨던 풋풋하고 정겨웠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라고 해서 왜 다툼이 없고 시기 질투 같은 것이 없었으랴. 농번기가 되면 물고 때문에 다투기도 하고,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기도 하며 장이라도 서는 날이면 시장 한 모퉁이에서는 술에 취한 취객들의 다투는 소리에 시끌벅적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곳이라면 이런 저런 살아가는 소리로 부산스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 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런 소란스런 삶의 소리들 속에서 자주 들었던 말 중 지금도 가슴에 따듯한 울림으로 남아있는 어휘가 하나 있다 그건 '이(利)하나 해(害)하나' 라고 하는 말이다.

어쩌다 골목 어귀에서 싸움이라도 벌어 질 때면 "아저씨가 좀 참아유. 이(利)하나 해(害)하나 좀 참으셔유" 라며 싸움을 말리는 이웃 어른들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젊은 날 한 때는 그 광경을 볼 때마다 저런 말이 어디 있을까, 시시비비의 내용이 분명하게 가려져야지 저렇게 하면 어떻게 하나싶어 참으로 의아해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는 세월이 나를 철들게 했는지 언제부턴가 두리 뭉실 해 보이는 그 말이 웬 지 모르게 정겹게 느껴지기 시작 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여 정답을 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이상 조금 손해 보는 듯 사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利하나 해害하나"라고 하는 이 어휘는 내게 그리움 같은 것이 되어 남아있다. 생각 해 보면 이웃 간에 상대방이 좀 이로운 것 같다고 해서 내게 좀 해가 되는 것 같다고 해서 안 될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利)하나 해(害)하나 좀 참으면 안 되겠느냐고 하는 이 말은 급격한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속도감 넘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겐 잘 어울리지 않는 말인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정확하지 않은 것도 같고 우유부단한 이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라고 흑백 논리를 좋아하는 누군가는 말 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 한 마디 어휘 속에는 어울림이 있고 사람 사는 냄새 같은 것이 있어 웬 지 모르게 정겹다. 냄새로 표현 한다면 뜸이 알맞게 들고 있는 밥솥에서 나는 구수한 밥 냄새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네들이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너무 빨리 변해가는 사회의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변해가는 것들을 따라 잡느라 숨이 차다. 자고 나면 신종 언어가 생겨나고 거리의 모습들이 쉴 새 없이 변해가고 그 속을 헤쳐가야 하는 우리네 마음 또한 삶의 작은 여유조차도 찾아보기가 날로 힘들어 지는 것 같다. 시간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흘러가는 것이련만 왜 이렇게 마음들이 각박해져 가고 너나 할 것 없이 무엇에 쫒기는 사람처럼 허둥대는 느낌이 드는 걸까.

언제부턴가 우리의 삶 속에서 느림의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고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잃어 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 안타깝다.

기계가 아닌 감정이 살아 숨 쉬는 사람인 우리는 느림에서 오는 여유로움에 가슴 한 자락쯤은 내어 주고 살아 보는 것도 좋으리라싶다. 모자람이 넘치는 것보다 낫다는 말처럼 '이(利)하나 해(害)하나' 서로 조금씩 양보하며 가슴을 맞대고 밥 냄새처럼 구수하게 살아간다면 우리네 삶이 조금은 더 풍요로울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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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