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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보영

충북여성문인협회장

떠나기 싫어 머뭇거리는 겨울의 끝자락을 몰아내고 한 낮의 봄 햇살이 가만가만 내려와 농원위에 머물고 있다. 동면에서 깨어난 연못안의 개구리들은 물 밖으로 몸을 내밀고 해바라기를 하며 요란스럽게 울어댄다.

따사로운 햇살이 반갑고 봄소식을 안고 일찍부터 찾아와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주는 개구리의 합창소리에 이끌려 갈퀴를 들고 나섰다. 땅위에서 시린 겨울을 나야할 화초들의 이부자리가 될까 싶어 꽃 진 자리에 그대로 두었던 마른 잎들과 주변의 검불들을 긁어내기 위해서다. 검불들이 걷히는 자리마다 그 속에서 몸을 움츠리고 겨울을 난 여러해살이 화초들이 얼굴을 내민다. 반가운 모습들이다. 지난겨울 내내 모진 칼바람과 눈보라를 견뎌 내느라 마가렛 잎은 상처투성이고 황금달맞이 잎은 붉다 못해 검붉은 자주 빛을 띠고 있다. 상처로 얼룩진 잎사귀 하나하나에 스며있는 모진 고독과 아픔이 느껴져 안쓰럽다.

갈퀴로 바닥을 긁어 주니 부드러운 속살이 드러나면서 흙 향이 코끝을 스친다. 생명이 움트기 시작하는 때부터 그 생명들이 소임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의 모든 것을 품어 안고 삭혀 낸 뒤에 토해 내는 향기다. 이제 막 동면에서 깨어나 품안에 보듬었던 생명들을 대지위로 밀어 올릴 준비를 시작하면서 토해 내는 향기이기에 더욱 풋풋하고 상큼하다. 숨을 깊게 들이쉬니 싱그러운 향내가 가슴하나 가득 차오른다. 때로는 버거워 손을 놓아 버리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도 이 향기 탓이 아닌가싶다.

검불들을 긁어내면서 살펴보니 그동안 저들의 터전이 꽤나 넓어진 것 같아 흐뭇하다. 작년 그러께 이웃에서 분양받아다 심어 놓은 토종 딸기나무들도 어느새 작은 언덕을 뒤덮고도 터전이 좁아 몸살을 앓을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저들을 바라보노라니 금년에는 더 많은 꽃을 피워 낼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 마음이 푸근해져온다. 해가 거듭되어 갈수록 스스로 지경을 넓혀가는 것이 대견스럽고 고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무엇을 어디에, 어떻게 심어야 할지를 잘 알지 못해 잡풀만 무성했던 여기저기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가하면 가꾸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땅이라 밑거름이 부족해 정원안의 생명들이 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많았던 지난 기억들도 떠오른다.

이 봄에는 땅의 작은 부분이라도 놀리지 말고 씨앗을 들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리라 스스로에게 다짐해 본다. 물론 심고 가꾼다는 것이 그리 용이한 일은 아니다. 서툰 내 경험으로 비추어보면 키 작은 것들과 키가 크고 무성하게 옆으로 퍼지는 것들을 생각 없이 심었더니 키가 작은 것들은 그늘에 가려 제대로 자라지 못했다. 심고 가꾼다는 것이 결코 용이하지 않다는 것을 순간순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막 태동이 시작 된 나의 작은 정원에 두엄도 듬뿍 내어야겠다. 꽃눈이 트기 전에 충분히 밑거름을 주어야 저들이 튼실하게 자라 빛깔 고운 꽃을 피워 낼 것이고 실한 열매를 맺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거늘 올 해에는 소망과 열정의 씨앗을 듬뿍 뿌려 아름다운 소산을 거두기 위해 값진 땀을 흘려야 할 것 같다. 식물들은 주인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고 하지 않던가.

이 모든 일들을 감내하려면 겨우내 움츠렸던 내 몸과 마음도 기지개를 켜고 일어서야 한다. 깊은 겨울잠을 자느라 조금은 늘어난 체중도 줄이고 안 쓰던 몸의 여러 부분들도 풀어주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뭉쳐 있던 근육들이 풀리느라 엄습해 오는 통증을 견뎌내야 할 게다. 아무리 좋은 기계라도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녹이 쓸듯이 우리네 몸도 움직이지 않으면 연결되어 있는 모든 부분들이 제 구실을 못하고 불협화음을 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올 해에는 어김없이 다시 찾아 온 봄소식의 힘을 빌려 내안의 묵은 검불들을 모두 걷어 버리고 마음의 묵정밭을 기경하여 새 순이 돋아 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 주어야 하지 않을까싶다. 이만큼의 세월을 살았으니 그만 내려놓아야겠다 싶어 덮어 두었던 이루지 못한 소망들이 새 잎을 피울 수 있도록 거름도 주고 물도 주어 가꾸어 보리라 다짐한다.

아직도 나의 삶은 진행 중이고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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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