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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두

시인·괴산문인협회장

봄이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온다. 꽃샘추위가 지나가고 나면 나는 지난해 수확하고 던져 놓았던 고구마 줄기와 낙엽, 검불 등을 모아 아궁이에 몰아넣고 태운다. 봄갈이를 위해 미리 땅과 주변을 정비하는 것이다.

바싹 마른 것들은 금세 타버리고 재만 남는다. 수북이 쌓인 잿더미를 보노라면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든다. 그 많던 검불들이 우리네 인생처럼 한순간에 잿빛으로 변해 색을 잃고 말이 없다.

잿빛은 회색이다. 회색은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는 무채색이다. 회색은 시신을 불태워 한 줌의 재로 변한 색깔을 연상하게 되어 기분이 가라앉는다.

반면에 무지개색 등 자연색은 얼마나 화려하고 아름다운가.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이 반원을 그리며 아침에 서쪽 하늘에 걸리는 무지개를 보면 탄성이 절로 난다. 색깔에 따라 감정이 출렁댄다.

얼마 전에 결혼 45주년 기념으로 아내와 함께 일본 온천지 여행을 다녀왔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일본은 풍경과 날씨에서도 우리와는 상당히 다름을 느꼈다. 시골 곳곳마다 눈에 들어오는 삼나무숲은 울창해서 좋았으나 집이나 빌딩들은 거의 회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었다. 특히 농산촌 마을은 집들이 주로 회색 계통으로 차분하고 좀 가라앉은 느낌 속에 고즈넉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도시는 질서정연하고 깨끗하지만, 우리나라 거리처럼 활력 있게 보이지는 않았다. 아무리 앞차가 천천히 가도 주황색 중앙선을 넘어 추월하지 않았다.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고 집단이 존속해야 개인이 산다는 의식이 철저하다고 여행가이드는 설명했다.

일례로 코로나 유행 시절에 어느 온천지역의 한 여관 주인이 손님이 전혀 없는 탓에 1년을 온천탕 청소를 하지 않고 있다가 모처럼 들어온 손님이 온천을 하다가 미끄러져서 크게 다치는 사고가 일어났다고 한다. 이 일로 인해 온천여관 주인은 자기들 온천지역의 이미지 추락을 우려한 주위 사람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아야 했고 결국 그 여관 주인은 자살하고 말았다고 한다. 이 간단한 사례는 일본이 얼마나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인지 잘 말해준다.

개인보다 집단 우선의 사회에 대해 가타부타 얘기할 필요는 없다.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섬나라로 기후가 습하고 비가 많이 오며 지진이 빈발하여 항상 자연재해에 노출되어 있어 집단적인 대처가 필요했고, 이런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전통 신앙으로 온갖 신을 섬기며 천황을 신격화하는 사회가 되었다는 설명에 수긍이 간다.

이번 여행으로 일본 사회에 대해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과거에 그들로부터 당한 쓰라린 상처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고 항상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 다시는 우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좀처럼 속을 보이지 않는 그들로부터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월등한 실력과 단결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일본 풍경의 주조를 이루는 회색을 생각하며 우리의 색깔은 무엇일까를 떠 올린다. 예전에 우리는 검은 색도 회색도 아닌 분명한 흰색이 주조였다. 지금은 흰색뿐만 아니라 다양한 색깔을 좋아한다. 거리에 다니는 사람들의 옷 색깔을 보라. 비슷한 색이기보다는 다양한 색깔의 옷을 입는다. 옷의 스타일도 비슷한 사람이 거의 없다. 그만큼 개인의 선호가 분명히 드러난다. 우리는 자유롭고 개성이 강하며 또 그만큼 창의적이다. 스스로 빛을 발하지 않는 회색보다 우리 색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아름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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