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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두

시인·괴산문인협회장

해마다 단풍이 최고조에 이를 때면 나는 연풍새재로 간다. 누구랑 같이 갈 때도 있지만 대부분 혼자 간다.

조령산휴양림 입구에서 부터 시작하는 단풍길은 천천히 걸어 한 시간이다. 바닥은 문경새재길처럼 고운 모래 다져진 길은 아니지만 굽이굽이 아기자기한 길이다. 노오란 갈빛 나는 참나무 단풍이 배경되어 불타는 핏빛 단풍이 압권이다. 길게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받아 빨간 단풍이 숨도 못 쉬게 다가온다.

나는 이 빨강을 대하면 저절로 발길이 멈춰진다. 지나칠 수 없는 자리, 저 붉은 물은 내 몸속으로 들어와 단숨에 나를 붉게 염색해 버린다. 노랑색은 몸을 편하게 나른하게 물들이지만 빨강은 그 중에서도 핏빛 빨강에 온 몸이 뜨거워진다. 단풍은 내 발을 땅에 붙잡아 놓고 자기의 타는 가슴을 실컷 들이마시라지만 순간의 절정이랄까 숨이 일순 탁 멎어버리는 묘한 환희를 맛보는 것이다.

연풍새재길은 옛날 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넘나들었다. 영주의 죽령을 넘으면 대나무처럼 미끄러지고 영동의 추풍령을 넘으면 추풍에 낙엽처럼 시험에 떨어진다 하여 문경새재에 올라 연풍새재를 넘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해 온다.

작년 겨울 끝자락에 찾았던 연풍새재의 감흥을 읊은 졸시 한 편이다.
 
새나 넘나드는 고개를
게으른 발길 앞세워 콧바람을 쐬었다
아직도 가슴 한 편에 남아있는 지난 가을의 감흥
계곡은 이미 하얗게 눈으로 색칠하고 있다
 
낙엽은 다 떨어지고 솔바람 윙윙대 스산하기만
마지막 잎새 같은 빨간 단풍잎 하나
반가이 맞아준다
 
새소리마저 들리지 않는
거친 바람소리 뺨을 때린다
묵묵한 나무 사이로 따스한 햇살이
간혹 구름 사이를
타고 비칠 때마다 행복이 눈송이처럼 내린다
 
나귀 타고 삼년이나 입은 삼베옷을 걸치고
새재를 넘던 옛 유생이
스스로를 그림 속의 시인이라 했다
난 아무 생각 없는 마음만 숲 속 시인이다
 
'연풍새재' 전문 / 장현두
 
그 화려했던 가을의 추억을 마음 깊숙이 갖고 다시 연풍새재길을 찾았는데 길가에 새겨 논 옛 유생의 시가 눈에 들어와 나도 옛 유생처럼 시 한 편 읊조렸던 것이다. 삼년이나 입었던 삼베옷을 걸치고 새재를 넘었던 옛 유생을 그려 본다. 가난해도 한참 가난했을 그는 아마도 마음의 행복은 결코 가난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어느 시대에 살던 우리의 생각은 같은 자연 속에 있는 한 비슷할 것이고 사람의 생이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한들 나고 살고 죽는 본질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그때그때의 단풍 색깔이 다르듯 생의 색깔이 다를 뿐이다.

연풍새재의 꼭지를 넘는 길목에 조령 3관문이 있다. 경상도 쪽에서 1관문부터 시작해서 2관문을 거쳐 여기에 이르고 충청도 연풍 쪽에서는 첫 관문이다. 학의 날개처럼 늘어선 양쪽 석벽을 보면 1관문의 양쪽 석벽처럼 그 지형에 딱 맞는 성벽을 쌓았다는 느낌이다. 울퉁불퉁한 자연형태의 돌을 어찌 그리 아귀가 딱딱 맞게 쌍아 올렸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조령 3관문을 넘어서면 갑자기 너른 잔디밭 광장이 펼쳐진다. 탁 트인 하늘을 바라보며 유유히 흐르는 산 능선을 바라보다 수령을 알 수 없는 전나무의 위용을 우러르며 전나무와 마주한 고송 한 그루를 존경심으로 바라보면 옛 정취가 살아나 저절로 나도 시 한 수 읊고 싶어지는 유생이 된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느낌은 비슷하다 생각한다. 천천히 가나 급하게 가나 인생의 행복을 지향하는 욕구는 다를 게 없다. 순간순간 느끼고 즐기는 내용은 다르겠지만 오히려 옛사람들의 행복지수는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거란 생각이다. 쫒기지 않고 여유롭게 인생을 즐기며 살았던 옛 모습을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가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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