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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10.14 16:18:17
  • 최종수정2020.10.14 16:18:17

윤기윤

작가

'이번에 한국으로 돌아가면 영어회화를 꼭 배워야지.'

외국 여행을 하게 될 때마다 다지게 되는 결심이다. 여행사의 단체여행에서도 이런 각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동행한 가이드가 모든 것을 척척 알아서 해주어도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불편은 여기저기 산재하기 마련이다. 밤늦게 숙소에서 발생하는 사소한 불편이나 요구사항 정도는 스스로 해결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길든 짧든 외국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타 언어권에서 순식간에 멍청이가 되는 느낌을 한 번쯤은 맛봤을 것이다. 그럴 때,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나라의 국민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 적도 많다. 그런 마음은 영미권 사람들의 우월한 문화적 지위로 인한 모종의 피해의식일 것이다.

오지(奧地) 여행가로 유명한 한비야 작가는 일본인들과 대화를 나눌 때, 주제의 명확성보다 자신의 영어 실력에 주눅 드는 모습을 수없이 경험했다고 했다. 토론에서 건방진 일본인을 눌러주고 싶은 충동이 생길 때, 유창한 영어로 빠르게 떠들어대면 알아듣지 못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겸손해지더라는 것이었다. 또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던 투수 봉중근 선수가 일본팀과 경기 도중, 애매한 판정이 나오자 미국인 심판에게 다가가 유창한 영어로 항의하는 모습을 TV 화면으로 본 적이 있다. 영어를 잘 모르던 일본 선수는 봉중근 선수와 달리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영어로 구사하던 봉중근 선수가 자랑스러웠던 기억이 생각난다.

영어를 모국어로 가진 나라의 사람들은 세계 어느 곳을 여행해도 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하니 얼마나 부러운 일이던가. 심지어 길거리에서 외국인이 영어로 길을 물어오면, 오히려 한국에 사는 내가 괜히 부끄러워지곤 하지 않았던가. 그렇듯 영어에 익숙치 못한 것을 아직도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언어의 위계질서를 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방탄소년단의 활약 때문이다. 방탄의 팬이 된 한 미국인이 어느 잡지에 기고한 글은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해준다.

'직업 때문에 전 세계의 교육자들과 교류했지만 한 번도 그들의 언어로 대화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때론 영어를 모르는 학생들도 가르쳐 봤지만, 최대한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려고 나름의 노력은 했을지언정 내가 그들의 언어를 배워야 할 필요성은 느낀 적이 없었다. 결국엔 그들이 영어를 배워 언젠가 나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리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BTS의 음악과 이야기를 듣고 제대로 이해하려고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비로소 나는 스스로를 철학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모두에게는 장벽과 편견이 존재한다. 그런 장벽을 만날 때면, 마치 내게 있어 BTS 같은 존재가 나타나 여러분이 그 벽을 넘을 수 있게 해 주기를 바란다.'

방탄소년단의 부모 세대만 해도 팝송이 좋아서 영어에 빠진 사람이 많았다. 비틀즈와 비지스, 퀸의 노래를 따라 부르고 가사를 익히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요즘 그 반대의 현상이 영미권에서 나타나고 있다. 방탄의 노래 뿐 아니라 그들의 인터뷰를 듣기 위해서 한국말을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외국의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는 늘 대기 인원으로 가득하고, 'BTS 노랫말을 활용한 한국어 교육 방안 연구'등의 논문도 발표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잡지 포브스(Forbes)誌는 'BTS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성공적인 케이팝 이름'이라고 했고, 타임(Time)誌는 BTS를 '팝의 왕자'라고 칭했다. 실비오 피에로룽 빌보드 부회장은 'BTS와 비견할 팀은 몽키스와 비틀스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BTS는 2019년 11월 빌보드가 지난 10년을 돌아보며 선정한 <소셜 아티스트> 톱 4위에 선정된 데 이어 올해엔 빌보드 차트 2주 연속 1위를 기록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방탄 팬덤에 깊숙이 들어선 사람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아이돌 그룹 노래 가사를 들으며 울게 될 줄은 몰랐다."

즐거운 마음으로 방탄의 뮤직비디오를 보다가도 번역된 가사를 읽으며 오열하기 시작하는 외국 팬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자면, 문화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실감하게 된다. 문화는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이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자서전 '백범일지'에서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라는 소원을 피력했다. 바야흐로 그 소원이 이 시대에 꽃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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