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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6.03 17:06:01
  • 최종수정2020.06.03 17:06:01

윤기윤

작가

"아빠, 정말 공부가 가장 쉬운 것 같아요. 이번 알바 끝나면 공부하려고요."

사회체험을 한다며 학교 휴학 중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아들애가 얼마 전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신이 정한 진로가 있기에 하루라도 빨리 그쪽으로 노력을 기울이길 바라던 차에 참으로 반가운 소리였다. 행여 마음이 변할세라 본인의 말 그대로인 장승수의'공부가 가장 쉬웠어요'를 얼른 사다 주었다.

요즘 코로나 사태 와중에도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었던 문제가 아이들의 등교 여부와 학습 문제였다. 이태원 클럽발 확진자로 인해 지역 감염자가 끊이지 않는 추세에서도 결국 교육부는 지난 5월 20일 고3부터 등교를 감행했다. 등교 첫날 고3 확진자가 나오고 해당 지역의 모든 학교가 다시 등교 중지가 되면서도, 이어 예정대로 5월 27일 중3 아이들 등교는 그대로 진행되었다.

이토록 생명을 담보로 하는 위험을 무릅써가면서 우리는 왜 아이들을 공부의 세계로 밀어 넣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언젠가부터 가방을 메고 이른 아침 바쁘게 학교를 향해 걷는 아이들을 보면 뭔가 애잔한 마음이 밀려오곤 했다. 그야말로 0교시부터 늦은 밤 야간자율학습까지 용케도 그 좁은 교실에서 오로지 칠판만을 바라보며 버티는 아이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인간은 왜 이리 사력을 다해 공부하는가.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이유를 물으면 미래를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공부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꿈을 이루거나 직업을 갖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공부하면 이룰 수 있는 것들이 참 많다. 그런데 사실 이는 공부함으로써 얻어지는 부산물 같은 것들이다. 즉 부차적인 혜택에 불과한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새 교과서를 학교에서 받아오면 할아버지께서는 달력의 하얀 뒷면으로 책 표지를 싸서 과목 이름과 학년 반, 그리고 내 이름을 위에서 아래로 정성껏 적어 주셨다. 국어, 사회, 음악, 미술 등, 그 순정한 이름 밑에 놓인 내 소속과 이름….

생각해보면 그것은 이 세상 요소요소에 위치한 내 존재를 압축해 놓은 것이었다. 학교에서 배우는 국어, 영어, 수학, 도덕, 역사 등의 교과란 이 세계를 그만큼의 부분으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 국어나 외국어 등은 인간의 소통 방식을, 역사는 인류의 과거를, 수학이나 과학은 물질의 세계와 문명의 원리 등을…. 결국 이들을 공부한다는 것은 이 세상을 알아가기 위함이고, 이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란 이 세계와 연애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우리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한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지, 속속들이 알고 싶어하는 것처럼, 이 세상을 사랑한다면 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

지금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는 아이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공부가 세상을 향해 바치는 사랑임을. 지루하고 따분하며 어렵기까지 한 공부라는 것의 궁극적 목표는 내가 몸 담고 있는 세계를 궁구(窮究)하는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나의 본질을 찾게 되고 결국 나를 더 깊이 사랑하게 되는 것임을. 공부함으로써 시험에 합격하고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선물의 포장지이며, 그 안에 들어있는 진짜 선물은 세상과 나를 사랑하게 된다는 것임을 말이다.

학자의 길을 걷는 공부든, 가수가 되기 위해 노래와 춤을 익히는 공부든, 세상을 배우고 익히는 시간만큼 인간을 순수한 열정으로 빛나게 하는 순간도 드물다. 아직은 공부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아이들도 조금 더 나이 든다면 공부의 참 의미와 진정한 즐거움을 깨우칠 날이 올 것이다. 많은 어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렇기에 오늘도 하루종일 좁은 의자에서 벗어나지 못해도, 마스크를 쓰고 운동장을 달려도,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일 것이다. 비록 등 떠밀려 가는 것이라 해도 공부에 무언가 삶의 비의(秘意)가 있음을 막연히 짐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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