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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3.04 17:17:53
  • 최종수정2020.03.04 17:17:53

윤기윤

작가

지난겨울 초입, 모처럼 만의 외유가 고되었는지 감기 몸살로 며칠 앓았다. 입맛을 잃어 아무 것도 먹고 싶지 않은데, 딱 한 가지 생각나는 음식이 있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시던 '정구지 죽'의 알싸한 향기가 새삼 입안을 계속 감도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시름시름 아프거나 입맛 없어하면 할머니는 텃밭의 부추를 뜯어다 흰쌀로 죽을 쑤어 주셨다. 그 단순한 식재료로 어찌 그리도 향긋하고 구수한 맛을 낼 수 있었을까. 서기(瑞氣)라도 서린 듯 그 푸릇한 죽을 한 술 한 술 떠먹을 때마다 혀끝에서부터 기운이 일던 기억이 새로워 아내에게 부추로 죽을 쑤어 달라고 청했다.

아내의 '정구지 죽'은 외양은 비슷했으나 예상했던 바,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그 맛은 아니었다. 부추와 쌀의 종류도 달랐을 것이고 첨가된 들기름의 맛도 달랐을 터였다. 그런데도 먹고 나자 몸이 개운해진 느낌이 들었다. 앓고 나서 회복되는 몸에는 새로운 에너지가 들어오는 듯 심신이 더욱 맑고 고요해지는 것도 같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온 나라가 코로나바이러스의 침투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마 몸이 낫지 않았다면 여행지에서 스쳤던 중국인들을 의심하며 혹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했을지도 몰랐다.

"우리는 우리가 먹는 것에 의해 사냥당하는 최초의 세대다."

코로나 사태에 최근 읽은 책의 한 구절이 겹쳐진다. 코로나19의 최초 진원지가 중국 우한의 야생동물 시장이 가장 유력하다고 하니 새삼 인간의 왜곡된 식도락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바이러스에 속절없이 당하는 인간 세계의 형국은 정말이지 먹는 것으로 인해 사냥당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법정 스님도 '먹어서 죽는다'라는 글에서 식용의 목적으로 동물을 대량 사육하며 발생되는 환경과 식습관 문제로 결국 인간은 '먹어서 죽는다'는 것을 역설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 대안으로 채식과 발효 식품 위주의 우리 전통적 식습관을 권장하였다.

채식이 좋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물론 영양학적으로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지나친 육류의 섭취는 각종 성인병의 원인임이 밝혀져 있다. 그렇다면 채식이 왜 좋을까. 익히 알려진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 도시의 삶에서 병을 얻었던 이들이 자연인으로 돌아가 산 속 열매와 풀을 주로 섭취하며 지병에서 벗어난 사례가 종종 등장한다.

과일을 포함한 모든 식물이나 나무들은 스스로 보호 물질을 만들어낸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장수하는 그들은 이동할 수 없기에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방법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그들은 위험이 닥쳐와도 사람이나 동물처럼 도망치거나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그 자리에서 끈기 있게 버티며 다양한 자구책을 만들어낸다.

나무의 뿌리는 때로 바위를 가르기도 한다. 나무뿌리 끝에는 뿌리골무라 하는 것이 있는데 이곳에서 나오는 점액질은 거친 흙을 부드럽게 만들고 수많은 미생물을 먹여 살린다고 한다. 이 나무뿌리 주변에 수많은 생명체가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공간이 생기고 이러한 생명 순환 고리가 바위를 부식시키며 작은 틈새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주엽나무의 생태 또한 신비롭다. 인적이 드문 곳의 주엽나무에는 가시가 없지만 사람의 왕래가 많은 곳의 주엽나무는 가시가 많다고 한다. 인적의 많고 적음에 따라 그 가시의 밀도 또한 달라진다고 하니 그 생명의 작용이 놀라울 따름이다. 늘 같은 모습으로 움직임이 없는 것 같지만 나무는 누구보다 능동적이고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침엽수가 많은 고산에서는 하늘이 아닌, 나무에서 비를 뿌리는 경우도 있다 한다. 이것을 수우(樹雨)라고 하는데 구름 알갱이나 작은 이슬이 나뭇가지나 잎에 매달려 있다가 큰 물방울이 되어 떨어지는 것을 말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테이블 마운틴에서는 여름철의 수우가 보통 우량의 세 배나 되어 여러 동식물들의 중요한 수원이 된다고도 하니 경이롭다.

지금의 이 바이러스 사태는 인간의 탐욕스런 식도락과 환경 파괴에 대한 자연의 경고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태계를 파괴하는 비상식적 먹거리에 탐닉하지 말고 더불어 공존하는 식물과 나무의 선한 영향력을 닮으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절기는 어김없어 삼월이 되니 곳곳의 나무들과 식물들도 잎눈을 틔우고 있다. 유록빛 나뭇잎들이 어서 환하게 피어나서 그 힘찬 생동의 기운으로 나쁜 바이러스를 물리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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