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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12.11 15:59:10
  • 최종수정2019.12.11 15:59:10

윤기윤

작가

아내는 유달리 채식을 고집합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본인 입맛대로 식단을 정하는 일이 많았죠. 따라서 육식을 좋아하는 나와 결혼 초부터 신경전을 벌이곤 했습니다. 아내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고기반찬을 준비하곤 했는데 고기를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횟수였고, 아예 퇴근길에 스스로 고기를 사와 직접 요리하는 일이 허다했지요. 그때마다 아내는 건강한 삶을 위해서 채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밥상머리에 앉아 누차 강의를 늘어놓곤 했죠. 그럴 때마다 나는, 고기반찬이 있는 밥상의 영역확대를 위해 육식의 필요성을 강조한 책들을 탐독해 반격하곤 했지요. 그러던 아내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전적으로 자식들 때문이었죠. 아버지의 성향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들은 늘 고기를 즐겨 찾았으니까요. 그러니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식단을 고기 위주로 짜게 된 겁니다. 자식들 덕분에 아내와의 식단투쟁은 본의 아니게 싱겁게 나의 승리로 끝나 버린 셈이죠. 아내가 백기를 들며 궁색하게 내민 주장은'한창 자랄 때는 육식이 꼭 필요하다.'는 논리였어요.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여전히 채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결코 버리지 못한 채 말이죠.

그런데 얼마 전, 우리 집에 새롭게 등장한 채식주의자로 인해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아내와 같은 채식주의자로 아내가 한결 반길 일이건만 새로운 채식주의자는 외려 아내와 묘한 대치 국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채식과 육식의 대결보다 훨씬 심각한 경우가 되어 버린 겁니다. 그 채식주의자는 바로 지난 봄 새 식구가 된 러시안 블루종(種) 고양이'아론'입니다.

녀석은 자라면서'고양이 앞에 생선'이라는 옛 속담을 불식시킬 만큼, 식성이 독특했죠. 본인의 주식인 사료 이외 다른 간식이나 생선 고기 등에는 일체 관심이 없습니다. 아이들이 연어 통조림이나 고급 간식을 줘 봐도 냄새만 맡다가 외면하곤 했어요. 한편 다행이라 여겼죠. 식탁에 어쩌다 남긴 생선이나, 고기반찬을 탐하는 일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녀석이 자라면서 흥미를 보이는 뜻밖의 음식이 생긴 겁니다. 바로 아내가 정성껏 키우는 식물들이었어요. 뿐만 아니라 식탁 위에 상추나 배추 등의 야채만 있으면 어느 틈에 올라와 갉아먹어 버립니다.

아내는 유난히 식물을 좋아해서 집안에 온갖 식물과 화초를 가득 들여놓았죠. 고무나무를 비롯해 틸란시아, 산호수, 테이블야자, 산세베리아, 로즈마리, 온갖 다육식물 등 헤아릴 수 없는 식물군들이 베란다는 물론 집안 곳곳 공기정화에 좋다는 미명하에 점령해 갔습니다. 심지어 서재는 물론 침대머리 맡도 그들의 점령지가 되고 말았죠. 얼마 전에는 침대 발치에도 게발선인장을 옮겨다 놓곤'저 꽃망울이 오래 머금고 있다가 꽃잎이 벌어지면 얼마나 오묘한 색채로 피어나는지 정말 신비해.'라며 꽃망울 잔뜩 맺힌 화분을 경이롭게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선한 눈망울이 갑자기 매섭게 변하는 것은 순전히 고양이 아론 때문이죠. 유유자적 화분 틈바구니를 헤집고 다니면서 나무줄기를 꺾어 놓거나 꽃잎과 이파리 등을 사정없이 뜯어먹거든요. 아내는 나와의 1차 음식대전에 이어 이제는 고양이'아론'과 2차 음식대전을 개시한 셈입니다.

아론이 특히 좋아하는 음식은 아내가 각별히 아끼는 게발선인장 새순입니다. 퇴근해서 돌아 온 아내는 끔찍하게 아끼는 식물들이 아론에 의해 처참하게 약탈당한 현장을 목격하면 분노를 금치 못하곤 합니다. 온 몸을 부르르 떨며 숨어있는 아론을 기어코 찾아내 매섭게 교육을 시킵니다. 하지만'소귀에 경 읽기'란 속담을'고양이 앞에 경 읽기'로 바꾸어야 할 판이죠. 아론은'저 인간의 불만이 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군!'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그에게는 한정된 아파트 내 공간이 곳곳이 탐험지이며, 다양한 식물들 세상은 즐거운 놀이터인 셈이죠. 아내의 강도 높은 훈육에도 아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틈만 나면 아내의 애지중지 식물들을 노립니다. 아내는 견딜만한 놈들은 어쩔 수 없이 남겨두고, 탐스런 여린 잎들을 지니고 있는 식물들은 안전지대로 피신시켜 놓고 철통방어진을 구축 중입니다.

둘의 전쟁 틈에서 나는, 애초부터 중립을 선포한 채 채식주의자끼리의 때 아닌 팽팽한 대결을 느긋하게 관람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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