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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작가

'옛날 청개구리 가족이 개울가에 모여 살고 있었다. 아들 청개구리는 이쪽으로 가라면 저쪽으로, 저쪽으로 가라면 이쪽으로 뛰어 다녔다. 아들은 엄마 개구리가 시키는 반대로만 했다.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한 곳도 아들 청개구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니다 큰 사고를 당할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 아들 청개구리의 어깃장에 늘 근심이 가득하던 엄마 청개구리가 큰 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래서 아들 청개구리를 불러 당부를 했다.

"내가 죽으면 꼭 개울가에 묻어다오."

그렇게 유언하면 아들 청개구리가 반대로 산에 묻어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아들 청개구리는 엄마가 돌아가시자, 그때서야 거꾸로만 행동했던 자신의 모습을 후회했다. 뒤늦게 철이 든 아들 청개구리는 엄마의 유언대로 개울가에 엄마의 무덤을 만들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개구리는 엄마 무덤이 물에 떠내려 갈까봐 우려되어 개굴개굴 슬프게 울고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 어른들께 많이 들었던 <청개구리 이야기>다. 그 덕에 청개구리는'말 안 듣는 아이'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애초에 이 이야기를 만든 사람은 비만 오면'개굴개굴'우는 청개구리의 모습에서 이야기의 착상을 떠올렸을 것이다. 말 안 듣는 어린 자녀에게 교훈을 주고 싶었을 터였다.

인간에게 가장 슬픈 일은 죽음이다. 가장 친밀한 엄마와 자식 사이에서 아직 어린 나이에 겪게 되는 사별은 엄청난 충격이다. 수많은 어린 아이들이 부모로부터 청개구리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부모의 의도대로 말 잘 듣는 아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적어도 죽은 부모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고 싶은 아이는 없을 테니까.

얼마 전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고 있는 한 지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일시 귀국했다. 그렇지만 가장 보고 싶은 아버지는 만날 수가 없었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이지만 묘소가 있거나 수목장이라도 했더라면 망자의 거주지를 찾아가듯 그렇게 찾아뵐텐데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너무 허전하고 안타까웠다. 이유는 아버지 유언 그대로 화장을 한 후, 강물에 남은 유해를 뿌렸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아버지 유언대로 따른다는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몹시 후회가 됩니다. 어디에서도 아버지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니까요. 그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드니까 묘하게 핏줄이 당기대요."

20대에 한국을 떠나 30년간 프랑스에서 살아온 그녀는 그동안 거의 한국을 찾지 않았다고 했다. 이제 나이 오십을 넘기니 그동안 꾹 눌러왔던 고향과 핏줄에 대한 그리움이 차올라 한국을 찾게 되었다고 고백을 했다.

그녀에게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유쾌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정을 등한시하고 늘 바깥으로 떠돌던 방랑자였다. 그러다보니 별다른 애정도 없었다고 한다. 우연히 프랑스 여행을 하게 되었다가 그곳에 여행가이드로 정착하던 중, 아버지의 부음을 듣고 유언대로 장례를 모신 후 다시 프랑스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방랑벽이 많았던 그 아버지에 그 딸이었나 봐요. 나도 한국을 떠나 프랑스에서 30년을 넘게 살았으니 말입니다. 이번에 아버지의 유해를 뿌린 강을 찾았어요.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다 문득 어린 시절 들었던 동화 <청개구리 이야기>가 떠오르는 겁니다. 정말 아버지의 속마음은 산에 묘를 써달라고 하고 싶었는데, 자식들에게 면목이 없으니 그냥 화장해서 강물에 뿌려달라고 하신 것은 아닌지 마음이 아팠어요."

동화 속'청개구리 이야기'가 엉뚱하게 현실에 재현된 느낌이었다. 죽은 자와 남아있는 자의 마음이 여전히 어긋나 있다. 결국 아버지의 유언은 딸에게 추모의 위안처를 빼앗아 버린 꼴이었다.

동화는 어린이에게 꿈과 상상력을 키워줘야 한다. 그런 면에서 청개구리 동화는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청개구리 엄마는 자신의 참마음은 숨긴 채 불신을 안고 죽었기 때문이다. 평생 아들 청개구리에게 슬픔의 멍에를 씌워주고 떠났다.

삶의 아이러니를 전하는 동화도 필요하지만, 서로 진실한 소통으로 화목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도 각박한 삶에 힘을 준다. 한여름의 개구리 소리가 울음이 아니라 즐거운 합창으로 들릴 수 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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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일보가 만난 사람들 - 단양교육지원청 김진수 교육장

[충북일보] 몇 년동안 몰아친 코로나19는 우리 나라 전반에 걸처 많은 염려를 낳았으며 이러한 염려는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 실제로 학력의 위기를 가져왔다. 학력의 저하라는 위기 속에서도 빛나는 교육을 통해 모범 사례로 손꼽히는 단양지역은 인구 3만여 명의 충북의 동북단 소외지역이지만 코로나19 발 위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해왔고 정성을 다하는 학교 지원으로 만족도도 최상위에 있다. 지난 9월 1일 자로 단양지역의 교육 발전에 솔선수범한 김진수 교육장이 취임하며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고 있다. 취임 한 달을 맞은 김진수 교육장으로부터 교육철학과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과 단양교육의 발전 과제에 대해 들어 본다.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동안 소감은. "사자성어에 '수도선부(水到船浮)'라는 말이 있다. 주희의 시에 한 구절로 강에 물이 차오르니 큰 배도 가볍게 떠올랐다는 것으로 물이 차오르면 배가 저절로 뜨더라는 말로 아무리 어렵던 일도 조건이 갖춰지면 쉽게 된다는 말로도 풀이할 수 있다. 교육장에 부임해 교육지원청에서 한 달을 지내며 교육장의 자리가 얼마나 막중하고 어려운 자리인가를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어렵고 바쁜 것이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