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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작가

"지난달에 백두산을 다녀왔어. 천지에 서니 가슴이 벅차더라. 뭐랄까 내 존재의 근원이 눈앞에 그대로 드러나는 기분과도 비슷했지."

뿌듯한 회상에 젖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내심 부러웠다. 태고의 신비를 지닌 백두산 천지의 공기는 어떤 맛일까. 같은 하늘이라도 천지에 비추인 하늘은 분명 다르다 했다. 그가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그 장대하면서 청청(靑靑)한 기운이 궁금한데, 막상 그 숭엄한 천지의 자연을 직접 육안(肉眼)으로 바라보면 얼마나 감흥이 새로울 것인가.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그 때의 감동에 흠뻑 젖어 방금 건져낸 듯 싱싱한 언어로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친구는 산을 무척이나 좋아해서 주말이면 어김없이 어디론가 훌쩍 산행을 떠나곤 한다. 그는 말미에 물었다.

"네가 가장 좋았던 산은 어디였어?"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명산(名山)을 다닌 기억이 도통 없었기 때문이었다. 생각나는 것이라곤 청주 우암산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우리 집 뒷산이었다.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한, 작은 동산(童山)이었다. 친구의 물음에'우리 집 뒷산'이라고 선뜻 대답하기가 좀 멋쩍었다. 웅장한 백두산의 비경과 비견되어 뒷산은 어쩐지 초라하고 감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치 번쩍거리는 친구의 외제차 앞에서 낡고 초라한 경차를 타고 와 선뜻 문을 열기가 민망한 느낌이었다. 아주 오래전에 전라도 월출산을 다녀오기는 했지만, 기억이 까마득했다.

친구와 헤어진 며칠 후 주말, 뒷산을 올랐다. 나지막하고 조금은 등이 굽은 듯한 작은 동산. 멀리 커다란 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니, 도심 속의 작은 섬 같기도 한 뒷산이다.

보통 집 근처가 아닌 산행을 위해서는 이것저것 챙기는 것도 많고 복장도 갖추어야 하건만, 뒷산은 이웃집 놀러가는 마음으로 편하고 가볍게 나서기만 하면 된다. 매일 짧은 거리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하고 나니 모든 풍경이 익숙해졌다. 그래서 자주 오르는 우리 집 뒷산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숲의 풍경이 달라질 뿐 행보가 단조롭게 느껴져 사실 특별한 감흥은 별로 없다. 다만 좋은 공기를 마시며 신체를 단련시킨다는 생각에 음악을 들으면서 런닝머신 타듯 기계적으로 뒷산을 오르곤 했다.

그렇게 뒷산의 야트막한 능선을 걷던 중, 지나치던 산객(山客)들의 두런거리는 말이 바람결에 실려 왔다.

"아, 청주에도 이런 산길이 있었어· 산책코스로는 아주 그만인걸. 적당히 구릉이 있으니 산을 오르는 맛도 있고 길이 완만하니 걸음이 편하네. 시골동네 고샅길 걷듯 부담 없어 좋네. 우리 집과 좀 멀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 등산객의 말은 한순간 생각을 바꾸어 주었다. 그것은 마치 내 주변사람들의 고마움을 모르고 더 좋은 친구는 없을까, 혹은 더 좋은 이웃, 식구들을 탐한 나의 욕심처럼 여겨졌다.

뒷산은 우리 집을 한겨울 거센 북풍으로부터 든든히 막아주며, 한여름에는 푸른 숲을 이뤄 한결 시원한 기온을 유지시켜주는 역할도 한다. 그런 뒷산을 하찮게 여긴 것 같아 못내 미안한 마음이 가득했다.

다음에 친구를 다시 만나면 꼭 해줄 말이 생각났다.

"내가 즐겨 찾는 산은 바로 우리 집 뒷산이야. 유명한 산은 아니지만, 내 가족 같아서 더 좋아. 친근하면서도 편안하거든.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절해서 무리가지 않게 운동도 잘 되고, 활엽수와 침엽수가 균형 있게 조화를 이루어 풍경도 근사해. 든든한 친구처럼 언제든 늘 품을 열고 있는 곳이지."

아무리 유명하고 멋진 산이라 할지라도 늘 곁에 두고 누릴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뒷산은 늘 가까이 있는 가족처럼, 친구처럼 항상 함께 할 수 있으니 좋다.

다만 이즈음 아쉬운 것이 있다면, 뒷산 봄의 연두와 성하의 녹음과 만추의 단풍까지 실컷 누렸으나, 청신한 설경(雪景)은 도통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이 온 아침은

앞산이 갑자기

가까워 보였다.

-박목월의 시<눈이 온 아침>中에서

조만간 기다리던 눈이 하늘 가득 내리면 자작자작 하얀 눈을 밟으며 뒷산을 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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