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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기윤

작가

산사(山寺)에 오르는 길 갈피마다 얼핏 적멸(寂滅)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여름의 정념(情念)이 스러진 가을 초입의 산은 곱게 나이든 중년의 여인처럼 맑다. 짙푸르게 달구어졌던 소란과 번잡의 시간을 지나 이제 옷 벗을 준비에 든 나무들은 고즈넉이 햇빛에 몸을 헹구고 있다.

산길에 성급히 떨어진 이른 낙엽들로 발밑이 부드럽다. 바스락 소리에 도토리를 주워 먹던 청솔모 한 마리가 순식간에 굴참나무 가지 위로 솟구치듯 올라간다. 인간이 저렇게 나무를 탈 수 있다면 신기(神技)에 가까운 기예라 하겠다. 이렇듯 경이로운 자연 속에서 인간은 겸허함을 배운다.

산을 내려와, 허기진 배를 채워 줄 음식점을 고르던 중 어쩐지 동그란 시선이 느껴져 발길을 멈추고 돌아다 봤다. 시선의 주인공은 커다란 징(鉦)이었다. 시골 마을의 오래된 유물처럼 집 담벼락에 홀로 걸려 있었다. 평상에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노인과 한 쌍의 그림으로 풍경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유난히 눈길을 붙들었다. 나의 시선이 동그란 징에 닿자, 징은 제 몸을 부르르 떨더니 한순간'쩡!'하고 소리를 냈다. 아니, 그렇게 느껴졌다.

무슨 질풍노도 무슨 잔치를 꿈꾸는가.

걸려있는 징

이어, 고은의 시(詩)가 정수리에 박혔다. 지금 징은 고요하지만 그가 울렸던 그때 세상은 온통 잔치였으리라. 그 소리로 사람들은 흥을 돋우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떠들썩한 잔치를 이끌고 고무하던 징은 지금 그 공명의 역사를 끌어안고 그저 고요의 빛을 반사해내고 있다. 평상에 걸터앉은 노인도 가을 햇살 아래 졸고 있다. 그러고 보니 노인도 하나의 징이었다. 그를 관통해갔을 수많은 명멸의 시간들, 그 시간들을 풀어내면 징보다 더 큰 음향이 울려나오지 않을까.

며칠 전, 조국 법무부장관이 사임했다. 근래 몇 달 동안 그는 대한민국의 '징'이었다. 나라의 입 있는 자마다 그를 두드리지 않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다. 그의 사퇴의 변은 이러했다.

"내 역할은 검찰개혁을 위한 불쏘시개에 불과했습니다. 상처받은 젊은이들에게 정말 미안합니다."

그가 울린 징소리의 파장은 나라를 흔들었다. 온 국민이 양분되어 거리로 나섰다. 나서지 않은 사람들도 분열되어 제각각 다른 목소리를 냈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그는 물러났고, 징소리는 멈추었다.

노를 젓다가

노를 놓쳐버렸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다보았다

다시, 고은의 시(詩)다. 우리가 희망을 젓다가 한순간 놓쳤다면, 이제 비로소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얻은 것이다. 노를 젓기만 하다 놓친 풍경을 이제라도 제대로 볼 수 있다면 다행인 것이다. 그나마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은 멈추지 않고 노를 저어왔기 때문이다. 그만큼 물살을 거슬러 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노를 놓았지만, 이제 양안의 제대로 풍경을 볼 수 있는 곳까지 왔다고 믿는다. 조국이란 '징소리'는 좌우를 더 잘 살필 수 있는 균형추가 되었다.

이제 조국 장관의 퇴임사처럼 그간의 언(言)과 행(行)이 불쏘시개가 되어 함께 하얗게 불타 바른 길이 보다 환해지기를 소망한다. 그 불빛으로'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로 가는 길을 밝혀주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점점 깊어가는 가을 산이다. 소란했던 여름 산은 소멸되고 무르익어 겨울을 대비해야 한다. 분열된 소리를 하나로 모아야한다. 그 울림의 힘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다시 봄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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