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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0.08.12 17:02:23
  • 최종수정2020.08.12 17:02:23

윤기윤

작가

동피랑 마을은 원래 조선 선조 때, 이순신 장군이 설치한 통제영(統制營)의 동포루가 있던 자리였다. 통영 시는 이 낙후된 마을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그러자 2007년 10월 '푸른 통영21'이라는 시민단체가 공공미술의 기치를 들고 '동피랑 색칠하기-전국벽화공모전'을 열면서 낡은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동피랑 마을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통영의 새로운 명소로 변모하였다.

통영에서 일으킨 문화의 바람은 2천년대 들어 <예술마을 만들기>로 퍼져갔다. 서울 대학로 인근 이화마을은 수많은 포토존을 만들며 <도시재생, 예술마을> 성공사업으로 손에 꼽혔다. 마을은 드라마의 촬영지로도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몇 년 후,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마을주민들이 페인트와 붓을 들고나와 벽화를 지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작품을 훼손했다는 이유로 마을주민 몇 명은 불구속 입건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왜 자랑으로 여겼던 마을의 상징을 스스로 지우기 시작했던 것일까.

애초 이화마을의 대다수 주민은 세입자였을 것이다. 실질적인 주인은 보다 좋은 환경의 자가주택에서 살았을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열악한 환경 덕분에 그나마 낮은 월세로 살아가던 주민들은 나날이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이화마을의 땅과 주택의 가치가 상승하는 모습에 불안했을 것이다.

청주의 수암골도 마찬가지다. 달동네 수암골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다. 그 뒤, 청주시에서는 열악한 환경의 수암골을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창출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수암골의 골목과 주택에 젊은 예술가들이 찾아와 벽화를 그리고 대문도 밝은 색상으로 바꾸면서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런데 당시 수암골을 지나다 만난 어느 할머니의 모습을 나는 잊지 못한다. 어쩐지 할머니의 표정은 수심이 가득했다.

"그나마 낮은 월세를 유지하면서 살아오던 터전이었는데, 수암골이 유명해지면서 피해 보는 것은 우리 같은 집 없는 세입자들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땅값이 천정부지로 올랐잖아요. 소문에 서울 사람들이 땅을 다 사서 커피숍을 지어대니 덩달아 이곳 집값만 올랐어요. 월세도 덩달아 자꾸 올라 걱정입니다."

문화사업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사업'이 낳은 아픈 이면이었다. 무엇보다 프로젝트에는 거주민들의 생활안정을 위한 대책도 함께 수립했어야 했다.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을 위해 어떤 안전장치를 확보해 놓았어야 했다. 누구를 위한 도시계획이었던가 싶다.

"공공주택은 죄가 없습니다.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리고 공공임대주택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가진 욕심은 단 하나입니다. 월세나 보증금 오를 걱정 없이, 터무니없는 임대료를 견디지 않아도, 쫓겨날 걱정 없이 장기간 주거의 안정을 희망하는 욕심, 저는 그 욕심이 곧'주거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 마포구에 사는 한 청년의 편지 내용 중 일부이다. 마포구 국회의원이 정부가 이곳에 공공주택 계획을 발표하자, 반대 의사를 표한 까닭이었다.

청년은 부동산은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닌, 거주의 기반이라는 인식을 분명히 하고 있다. 싱가포르 현지인들의 경우는 비교적 일관된 거주 형태를 보인다. 인구의 약 80%가 공공주택에 거주한다. 싱가포르의 공공주택은 99년간 정부와 임대차계약을 맺으며 주택개발위원회(HDB)가 관리한다. 이러한 주거용 주택개발의 대부분은 정부 주도하에 공개적으로 통제되고 개발이 이루어진다. 그런 까닭에 싱가포르에서 주택은 결코 투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구조다. 주택의 매매를 통해 수익이 발생하면, 불로소득으로 보고 모두 국가에서 세금으로 환수하기 때문이다.

주택이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지금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1가구 1주택>은 거주 공간이야말로 인간의 중요한 삶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채 이상의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에게는 무작정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기보다는, 매매를 통해 처분할 수 있는 유예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정부가 인구 밀집 지역에 공공주택을 늘려가면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에 의해 자연스럽게 주거문제의 균형이 잡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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