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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분원 '충주기록관' 반드시 유치해야"

고려·조선조 시대 '忠州史庫' 역사성 계승

  • 웹출고시간2016.06.16 19:50:13
  • 최종수정2016.06.23 19:51:05

건물의 좌향과 화려한 단청으로 미루어 조선초기 충주사고 관리 관원을 위한 별관으로 추정되는 충주관아의 제금당 전경.

[충북일보] 국가기록원 분원 추가 설치가 가시화되면서 사고(史庫)의 역사성을 고려할 때 충주에 반드시 유치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충주사고는 고려말 왜구의 침탈로 여러 곳을 전전하던 고려조 실록의 외사고가 공양왕 2년(1390)에 충주에 이치(移置)되면서 이후 충주사고로 명명되고 세종27년(1445)에 전주와 성주에 새로운 외사고를 설치하여 춘추관, 충주, 전주, 성주의 4사고(史庫)가 이룩된 것에서 알수 있듯이 고려, 조선조에 걸친 유일한 역사성을 갖고 있었다.

특히 충주사고는 고려시대 외사고를 이어받았기 때문에 다른 외사고 보다 중요한 자료가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데 태종의 명에 따라 가져온 책의 목록에는 의학, 음악, 자전, 역사, 지리, 풍수서, 고려역대실록 등이 있다.

세종도 충주사고의 서적부를 친히 살펴보고 볼만한 책을 가려 뽑았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만 아쉽게도 임진왜란으로 불타버린 뒤로는 외사고로 복구되지 못하였다.

충주사고의 위치에 대해 향토사학자 최일성 전 충주대 교수는 '충주사고에 관한 고찰'에서 최초에는 지금의 전화국 서쪽에 위치했는데 세종21년(1439)부터 전주사고가 새로 지어지는 성종4년(1473) 전에 객사의 동남쪽 즉 지금의 성내동우체국과 성내마을금고 부근으로 옮겨 다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충주의 근세사를 재조명하고 있는 전홍식 박사(52·한국교통대 선임연구원)은 "충주 관아 청녕헌이 진산인 대림산을 향해 남서향인데 비해 제금당은 정남향이고 화려하게 단청을 한 것을 보아 격이 높은 건물로 생각된다"며 제금당이 조선초기 충주사고에 보관되어 있는 실록을 관리하기 위해 내려온 관원을 위한 별관으로 추정했다.

당시 충주사고에는 9명의 전담관원이 있었다.

대전에 본원을 둔 국가기록원은 서울, 대전, 부산기록관과 세종시에 대통령기록관을 두고 있는데 국가 중요 기록물을 권역별로 분산 추가 건립하는 방안을 중장기 과제로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이주홍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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