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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2.13 15:57:41
  • 최종수정2025.02.13 15:5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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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견도 - 작가미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KBS-TV '진품명품'이라는 20년 역사를 자랑하며 안방극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 프로그램은 다양한 의미가 숨겨진 화가의 그림, 한국의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도자기, 선비의 품격을 담은 고서와 문서, 조상들의 삶과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민속품, 그리고 생생한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근대유물까지, 세월 속에 묻혀있던 진품명품을 발굴하여 그 가치를 깨닫게 하는 기쁨을 주고 있다. 분야별로 기라성 같은 전문 감정위원이 매와 같은 예리한 시선으로 우리 고미술품의 진가를 확인시켜 줄 때마다 신비로운 감정(鑑定)의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작품을 감정(鑑定)한다는 것은 작품의 기본 정보를 확인하여 작가의 스타일과 기법을 분석하고 미술사적 맥락을 고려해 판단해야 하는 고도의 전문 작업이다. 이런 심오한 작품 감정의 세계에서 전문감정가도 아닌 사람들이 주먹구구식으로 감정하여 학생들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하고, 전 국민을 속인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작가 미상의 '맹견도'라는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이 맹견도는 1910년대에 서울 북촌의 한 고가(古家)에서 집수리를 하기 위해 집안의 가재도구를 마당에 내놓은 것들 중에 하나였는데, 지나가던 어느 화가의 눈에 띈다. "굵은 쇠사슬에 묶인 맹견 한 마리가 바닥에 배를 깔고 조용히 엎드려 있는 그림으로, 발견자는 이제까지 본 동양화와 달리 개의 표정이 너무나 생생하고 터럭이며 골격의 구조가 마치 실제 살아있는 개의 모습 그대로를 보는 듯 했다."고 처음 봤을 때 소감을 얘기했다.

이 그림을 발견한 사람은 춘곡 고희동(春谷 高羲東,1886~1965)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로 190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귀국 후 고등보통학교 미술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친 인물이다. 휘문고보에 근무할 때는 간송 전형필에게 영향을 줘, 보화각(간송미술관)을 세우는데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서양화를 그렸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라는 타이틀을 포기하고 유학 가기 전 그렸던 동양화를 다시 그린다.

이 맹견도는 한때 단원 김홍도 작품으로 알려져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다. 50대 이상이라면 중·고등학교 미술 교과서에서 보았던 낯익은 작품 중 하나일 것이다. 필자도 중학교 다닐 때 이 그림을 미술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다. 어린 중학생의 눈이었지만 자주 보던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하고는 전혀 다른 화풍의 그림이 단원 김홍도의 그림이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이 의아하다고 생각했었다. 필자는 33년 미술교사를 하면서 많은 미술 교과서와 미술관련 책자들을 수집해 왔는데, 한가할 때 어딘가 숨어있을 단원 그림이라고 되어있는 이 그림을 찾아볼 생각이다.

맹견도를 발견한 고희동은 스승인 당대의 최고 화가 심전 안중식(安中植)과 소림 조석진(趙錫晋)을 불러 감정한다. 셋은 '기교나 품격으로 보아 이 정도 그림은 단원만이 그릴 수 있는 작품이다.'는 결론을 내리고, 대뜸 단원의 자(字)인 '사능'이란 낙관을 찍어 화상에게 넘겼다고 한다. 근본을 모르던 개 그림 한 점이 당대의 최고 화가들의 설익은 감식안에 단원 작품으로 재탄생하는 순간이다. 고희동과 안중식, 조석진은 당대 한국화단을 좌지우지하는 대가이지만, 그림 감정 전문가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당시 화단에서 엉뚱한 그림을 단원의 작품으로 둔갑시킬 정도로 파워가 막강했던 것이다. 그림을 양도받은 화상은 맹견도를 1918년 덕수궁 미술관에 20원을 받고 팔았다고 한다. 지금 가치로 200만 원 정도 되는 돈이라 한다. 그 후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는지 맹견도는 줄곧 화단의 논란 중심에 서게 된다. 서양화풍이 17세기 조선에 유입됐지만 완벽하게 구사한 명암법과 투시법으로 보아 단원의 것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미술학계는 서양화법을 익힌 조선인이나 중국인의 그림, 또는 중국에서 활동했던 서양화가의 작품일 수도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림 속 왕방울만한 눈, 짧고 촘촘한 털을 가진 개의 모습 또한 토종 누렁이와 너무 다르다는 점도 결론을 뒷받침한다. 논란이 한창일 무렵 낙관도장도 가짜임이 밝혀진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국립중앙박물관은 '단원 김홍도 작' 대신 '작자 미상' 꼬리표를 그림에 붙인다. 마침내 맹견도 논란은 종식되고, 1960년도 일반에 공개된 후 50년 넘게 수장고에서 잠자는 신세가 되고 만다. 또 흥미로운 일은 고희동은 맹견도를 판 돈으로 여러 날을 장안의 고급 요릿집을 순례하며 술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위작'을 만들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희대의 사기를 친 후 뒤풀이가 여러 날 계속된 것을 보면, 예술인으로서 느끼는 양심의 가책이 그만큼 컸기 때문은 아닐까·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천경자 위작시비 미인도.

또 하나의 황당한 그림 감정 사건은 필자가 전에 '이동우의 그림 이야기(2022.10.13)'에서 썼던 천경자의 '미인도' 위작 시비 사건이다. 미인도는 본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10.26 사태로 그의 재산이 압수되면서 이 미인도 작품도 정부의 소유로 넘어갔고, 우여곡절 끝에 1980년 5월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로 들어가게 된다. 그 후 10여 년간 잠자던 작품은 1991년 3월 문화공보부가 '움직이는 미술관' 순회전의 전시작으로 선정되어 세상에 모습을 나타내게 되었고, 이 그림을 직접 확인한 천경자 작가가 자신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길고 긴 위작 논쟁이 시작된다. 그림 감정(鑑定)이 감정(感情)싸움이 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촉을 받은 '한국화랑협회 미술품 감정위원회'는 1991년 진품이라고 판정한다. 천경자 작가는 이에 대해 강하게 항변하였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언론에 보도된 내용과 논란 당시 작가의 나이가 67세였던 점이 맞물려 '자기 그림도 몰라보는 정신 나간 작가'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결국 큰 충격을 받은 작가는 사건 직후, 최고의 명예인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감투를 반납하고, 작품 활동을 중지하겠다고 선언한 후, 딸이 있는 미국으로 떠나버린다. 그 후 모국을 원망하면서 2015년 이국만리에서 사망한다.

작가는 "내가 낳은 자식도 못 알아보는 어미가 있냐·"며 본인이 그린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했고, "그 그림은 내가 그린 것이다."라고 말하는 위조범(권춘식)까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국립현대미술관의 위촉을 받은 감정기관에서는 진품이라고 판정한 것은 미스터리한 일이라고 지금도 얘기되고 있다. 위조범이 그린 가짜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거대조직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힘없는 한 작가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사건이라 말하는 이도 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라는 말도 있듯이 작품 감정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소신과 원칙을 지킬 수 있는 실력 있는 전문감정가가 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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