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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의 그림 이야기 - 이발소 그림과 민화(民畵)가 나아갈 길

  • 웹출고시간2025.05.07 16:53:24
  • 최종수정2025.05.07 16:53:23
삶이 나를 속일지라도 아니 삶이 나를 속인다 해도

나는 이발소에 간다.

이곳저곳 얼룩지고 벗겨진 거울, 오래된 빗과 가위가 있는

뒷골목 평화이발관.

성자께서 열두 제자와 나누는 최후의 만찬,

'오늘도 무사히'를 간절히 비는 어린 소녀의 경건한 얼굴,

전나무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시원스레 쏟아져 내리는 폭포,

금빛으로 물드는 전원에 물레방아 도는 아담한 초가집 한 채,

십여 마리가 넘는 새끼 돼지들에게 젖을 먹이는 어미 돼지,

우리의 바람과 꿈을 이토록 정교하게 대량으로 모사해 내는

삶과 예술이 때론 어설프게 때론 절묘하게 만나는

희망공작소 그림들의 안녕과 풍요를

누가 이발소 그림이라고 이름 지었을까?

이 그리운 풍경과 삶을 누가 싸구려 통속이라 했을까?

어떤 삶이 고단한 당신을 속였는가?

해 우울하고 슬퍼하고 노여웠는가?

시퍼렇게 날이 선 면도칼 아래 하얀 목을 맡겨두고도

곤히 잠을 청하는 평화이발관 그림 아래 안식,

빨갛고 파랗고 하얀 낡은 삼색 표시등,

하루 종일 털털거리고 도는

저렴한 그러나 대담한 선과 원색의 색채가 내뿜는

아우라가 깃든 내 첫 번째 미술관.

연탄 난로, 이발기(바리깡), 면도칼 가는 가죽띠, 면도 거품 내는 작은 통과 솔, 어릴 적 다니던 이발소 풍경을 생생하게 생각나게 하는 곽효환 시인의 '이발소 그림'이라는 시이다. 오래전에는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장원에 가야 한다는 룰이 있었다. 그 룰이 언제부터인가 깨지기 시작해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만 주로 이발소를 찾고, 대다수 남자들은 미용실을 찾는 시대가 됐다. 그때가 미장원이 미용실로 이름이 바뀌면서 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찾았던 시골 이발소에는 곽효환 시인이 시에서 언급한 그림 외에도 많은 그림들이 걸려 있는 작은 전시장이었다. 보름달 밤 대숲을 헤치고 나오는 호랑이와 용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용호상박', 밀레의 '만종', '이삭 줍는 여인들', 그리고 '천객만래'나 '가화만사성',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로 시작되는 시화 등의 액자들이었다. 이발소 그림은 무명 화가에 의해 누구라도 알만한 세계의 명화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 그림들은 유화나 아크릴 물감이 아니라, 값싼 페인트로 그려졌고, 작가의 개성은 찾을 수 없는 기계를 찍어낸 것 같이, 하루에 수십 개를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똑같은 그림들이 생산됐다. 분업화돼, 어떤 라인은 밑그림, 어떤 라인은 채색, 어떤 라인은 명암 넣는 식으로 작업이 진행돼 대량으로 완성됐다고 한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삼각지역에서 용산 전쟁기념관으로 가는 길목에는 아직도 이발소 그림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있다고 한다. 요즘은 이발소에 그림을 거는 집이 거의 없어 수요가 많이 없어지자, 차량 통행은 많으나, 차 주차하기 편한 도로변이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 앞에서, 근사한 액자에 담겨진 소품은 몇 만원, 큰 작품은 몇 십만원 대에 거래되고 있다.

70년대 문화불모지 시골에서 자란 필자가 그림을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전시장이 이발소였다. 지금까지 붓을 안 꺾고, 30년 넘게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사는 것은, 어릴 적 이발소에서 봤던 그림들이 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남들은 예술성이 없는 수준 떨어지는 그림들이라 말할지 몰라도 밀레의 작품들은 그림을 좋아하는 소년에게 교과서와도 같았다. 과장해 말하면 밀레의 그림에 나오는 들판은 '플란다스 개'에 나오는 '넬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루벤스 그림과 같이 신비로운 상상력의 바다였다.

이발소 그림의 시작은 미국 남북전쟁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보는 미술사학자들이 있지만, 필자는 조선 시대 민화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민화는 한국의 전통을 담은 민속적인 그림으로, 일상생활, 동·식물, 인물, 신화적 요소 등을 다양하게 표현했다. 주로 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았으며, 화려하고 대조적인 색상을 사용하고, 간결하고 자유분방한 형태로 그려진다. 민화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들에 의해 미술, 동양화라는 용어와 함께, 처음 사용돼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이발소 그림과 조선 시대 민화의 공통점은 무명 화가에 의해 화려한 색감과 독특한 스타일로 대량 생산된다는 점, 한국 전통문화와 삶의 모습을 반영하며, 복을 기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민화는 조선 시대에 많이 그려지다가, 현대에 와서 '한국미술협회'에 '민화분과'가 생길 정도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다. 미술대학 정규 교육과정으로 민화를 가르치는 곳은 없지만, 대학 평생교육원, 각종 문화강좌, 개인화실의 도제식 교육을 통해 많이 보급되고 있다. 민화가 성행하는 이유 중 하나는 데생력이 없어도 원화를 그대로 그릴 수 있는 채본이 있어,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 취미생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작가의 창작이 아닌 채본(그림본)에 의해 그려지다 보니, 그룹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이 같은 채본으로 그려져 색감만 다른 같은 그림들이 걸리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리고 충북미술협회와 충청북도교육청이 협약한 '그림임대사업'에 개성이 없다는 이유로 민화작품은 정중히 거절당하는 일까지 생기고 있다. 현대민화의 문제점은 전통민화가 현대사회와의 연결이 약해져 젊은 세대의 관심을 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전통적인 주제가 현대의 감성과 맞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옛것을 답습만 할 것이 아니라, 기법은 옛것을 취하되 새롭게 창작해 민화가 더욱 발전하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를 전통민화와 대비해 창작민화라 말하는데, 일부 작가들에 의해 시도되고 있는 분위기이다.

얼마 전 서울 인사동에서 '창작민화 공모전'을 보고 왔는데, 고루하지 않고 신선한 느낌이 드는 것이 좋은 인상을 받았다. 창작민화는 작가의 개성과 감정을 담아낼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다. 각자의 독특한 스타일과 주제를 탐구해 더욱 개성적인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전통민화의 요소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전통기법을 현대적 소재와 결합함으로써 독창적인 결과물을 돌출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프랑스에서 프랑스인들과 전통민화를 같이 그려보면서 K-Culture의 영향으로 민화에 관심이 많음을 알았다. 민화를 해외에 알리고 국제적인 전시회나 행사에 참여해 글로벌 인지도를 높인다면, 다양한 문화와의 융합을 통해 K-Art의 새로운 영역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았다. 이제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법고창신정신으로 창작활동을 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한다. 아직은 법고는 많지만, 창신이 적은 듯해 안타깝다. 어느 화가가 말했듯이 "밀가루로 빵만 만드는 게 아니라 국수나 수제비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동우

미술관장·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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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