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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우의 '그림이야기' -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 나혜석

  • 웹출고시간2023.02.09 16:44:45
  • 최종수정2023.11.16 17:29:36
"4주후에 뵙겠습니다."라는 명대사를 남긴 '사랑과 전쟁'이라는 KBS드라마가 있었다. 부부들의 실제 갈등 사연을 재구성해 드라마로 보여주고,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해결방안을 제시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100여 년 전 경성에 이 '사랑과 전쟁' 드라마에 좋은 소재가 될 만한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대부분의 백성들이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어렵게 살았을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그림 공부하러 가고, 세계 일주를 할 정도로 풍요롭게 살다가, 어느 날 외도로 이혼을 당하고, 우울증, 파킨스병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에는 추운 겨울날 행려병자로 쓸쓸하게 세상과 이별한다. 사인은 영양실조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극과 극의 삶을 살다간 그녀의 이름은 나혜석(1896~1948)이다.
나혜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화가로 300여점의 작품을 그렸지만, 작업실 화재로 대부분 소실돼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자화상'과 '김우영 초상' 그리고 이건희 컬렉션에 포함된 '화녕전작약' 등 10여 점에 불과하다.

그녀는 야수파의 영향을 받아 사실을 주관적 시각으로 대상을 단순화시키고 색채를 강렬하게 구사한 그녀의 풍경화는 섬세한 필선, 밝고 고운 색조, 구도의 신선함이 돋보인다고 평가 받고 있다.

나혜석은 25살 때 35세의 애 딸린 홀애비 변호사 김우영에게 열렬한 구애를 받는다. 이에 "평생 지금처럼 사랑해 줄 것,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 말 것,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별거하게 해줄 것, 최승구(나혜석의 옛애인)의 묘지에 비석을 세워 줄 것 "등의 파격적인 조건을 승낙하는 조건으로 결혼한다. 결혼 후 3년간의 세계 일주를 떠나는데 프랑스에서 '최린'이라는 한 남자를 만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최린은 3.1만세 운동 민족대표 33인중에 한명으로 나중에는 친일파로 변절한 천도교 실세였다. 나혜석은 이 남자와의 불륜죄로 남편 김우영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최린에게도 버림을 받은 후, "정조유린죄'라는 죄목으로 12,000원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으나 패소하고 만다. 당시 경성에 좋은 기와집 한 채 값이 1,000원 정도 했다고 하니, 12,000원은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서울 북촌한옥이 10억정도하니 120억이 넘는 거금이다. 이때 심정을 '이혼고백서'라는 제목으로 글을 남겨 발표하는데, 이 글을 보면 그녀가 어떤 사상으로 살았는가 짐작할 수 있다.
조선 남성 심사는 이상 하외다.

자기는 정조관념이 없으면서 처에게나 일반 여성에게 정조를 요구하고

또 남의 정조를 빼앗으려고 합디다.

(중략)

조선 남성들 보시오.

조선의 남성이란 인간들은 참으로 이상하고, 잘나건 못나건 간에

그네들은 적실, 후실에 몇 집 살림을 하면서도 여성에게는 정조를 요구하고 있구려.

하지만, 여자도 사람이외다!

한순간 분출하는 감정에 흩뜨려지기도 하고 실수도 하는 그런 사람이외다.

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내가 만일 당신네 같은 남성이었다면 오히려 호탕한 성품으로 여겨졌을 거외다.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나는 그대들의 노리개를 거부하오.

그래서 나혜석은 화가보다는 시대를 앞서 살았던 여성운동가, 사회운동가로 더 부각되고 있다.
그녀는 억압된 조선 여성들을 대변하고,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고자 했다. "여자도 사람이다. 여자라는 것보다 먼저 사람이다."라는 주장을 자신의 삶에서도 실천한다. 여성에게만 정조를 강요하는 가부장적 사회를 질타하고, 여자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우해줄 것을 글과 그림으로 거듭 주장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를 키우면서 "자식이란 모체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 "모성애를 강요하지 마라"는 취지의 발언을 과격한 어조로 잡지에 기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와 보수적인 지식인과 유학자 등은 모두 그녀의 견해를 외면한다. 불륜을 저지르고도 당당한 나혜석이 좋은 시선으로 비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혼 후 나혜석은 친구인 일엽스님이 있는 수덕사를 찾아가 출가를 원했으나 만공스님으로부터 거절당하고 한동안 수덕여관에 기거하면서 주변 아이들을 모아 미술을 지도한다. 그 제자 중에 한명이 한국화의 대가 '고암 이응노' 화백이다.

그리고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라고 했던 둘째아들 '김진'은 서울대 법대교수, 셋째아들 '김건'은 친모의 손길 없이도 한국은행 총재를 할 정도로 잘 성장한다. 나혜석의 큰오빠인 '나홍석'의 손녀가 강인한 어머니 역할로 유명한 '나문희' 배우이다. '나문희'의 고모할머니가 나혜석인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문희 배우의 당찬 연기를 볼 때마다 그녀의 예술적 열정이 나혜석의 유전자를 물려받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지금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양성평등의 분위기는 100년 전 나혜석은 같은 선구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녀의 출생지인 수원행궁 옆에는 '나혜석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이 길을 걸으며 불꽃같이 살다 간 한 여인을 생각해 본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 나혜석의 이혼고백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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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