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구름조금충주 17.0℃
  • 맑음서산 18.6℃
  • 맑음청주 18.1℃
  • 맑음대전 18.5℃
  • 구름조금추풍령 19.0℃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홍성(예) 18.0℃
  • 맑음제주 21.3℃
  • 맑음고산 18.8℃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제천 17.2℃
  • 구름조금보은 17.3℃
  • 구름조금천안 17.8℃
  • 맑음보령 18.9℃
  • 맑음부여 18.7℃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여린 바람에도 흔들리는 코스모스 꽃길로 가을이 온다. 가을과 함께 추석 명절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추석 하면, 구부정한 등에 망태를 메고 차부(車部)에서 우리를 기다리시던 시아버님의 정다운 얼굴이 떠오른다.

 명절이 오면, 우리 아버님의 가장 중요한 일은 자식들을 마중하시는 거였다. 아침부터 비어 있던 방에 군불을 넉넉히 때서 아랫목 윗목 없이 방바닥을 미리 후끈하게 달구어 놓으시고 저녁때나 되어야 돌아올 것을 뻔히 아시면서도 오정이 지나면서부터 차부 근처에서 서성이셨다. 긴 기다림 끝에 자식들이 차에서 내리면, 달려와 안기는 손자 손녀들에게 함박웃음을 날리시며 "배고프지?" "가방 이리 내라! 뭐가 이렇게 무거우냐?" 이렇듯 푸근한 말씀으로 자식들을 껴안듯 맞아 주셨다.

 그 모습은 망태기에다 사람의 마음을 끌어 담는 넉넉함이었다. 아버님의 마중을 받으면서 흩어져 살던 자식들이 모두 돌아오면, 고향 집은 금세 시끌시끌해졌다. 마루 밑에 누워 있던 누렁이가 달려와 꼬리 치며 반겨 주었고 뒤란 우물에서는 달고 시원한 생수를 퍼 올리는 소리가 소란스러웠다. 댓돌에 즐비하게 벗어 놓은 신발이 엎칠락 뒤칠락 하고 "하하하, 호호호, 까르르" 아들, 손자, 며느리의 웃음소리는 아름다운 하모니가 되어 담을 넘었다. 어머님의 손맛이 배어 있는 구수한 밥상이 들어오면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더없이 정겨웠다. 밤이 깊도록 명절 음식을 장만하면서 그간 하지 못했던 속말을 오순도순 풀어놓는 자식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기분이 좋아지시던 아버님! 주고받는 고단한 사연을 덮어주듯 어둠은 조용히 고향 집을 덮어 주었다.

 유난히 휘늘어진 코스모스가 눈에 띈다. 그 사이로 어머니의 행주치마 자락이 보이는 듯하다. 가슴 밑바닥에서 그리움이 물결처럼 일렁인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제법 먼 길을 걸어서 학교에 다녔다. 돌아오는 길에는 삘기도 뽑고 찔레순도 꺾으며 낭창거리다 보면 늦기가 일쑤였다. 당번이 되어 청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더 늦어졌다.

 늦어지는 날은 들판으로 난 마차 길로 다녔는데 그날따라 조금이라도 빨리 갈 요량으로 질러가는 숲길을 택했다. 사방에는 이미 어둠이 깔리고 나와 친구의 가랑잎 밟는 소리만이 적막을 깨뜨렸다. 낮은 풀벌레 소리에도 화들짝 놀랐다. 하나둘 빛을 드러내는 별들도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온몸에는 땀이 흥건히 고였다.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가자니 더는 다리가 떨어지질 않는다. 울 수도 없는 절박한 순간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린다. 극도로 긴장하여 떨고 섰는데 '거기 누구냐? 영옥이냐?' 귀에 익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만 "엄마" 하며 주저앉아 버렸다. 어머니의 커다란 품이 참으로 포근하다고 느끼며 가물가물 정신을 잃었었다. 그날 이후론 저녁 밥상에 아이가 한둘 빈 날이면, 어머니는 설거지를 미루시고 누군가를 데리고 마중을 나가셨다. "뭐 하러 나왔어."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화들짝 반가웠던 시절이다. 우산을 받쳐 들고 마중을 나갔고, 흰 눈이 쌓인 길은 물론 어깨너머로 별똥 떨어지는 것을 보며 가족을 기다렸다.

 마중하는 일은 챙겨주는 마음이요, 너의 애씀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현이다. 또한 마중은 끊을 수 없는 끈끈한 정이요. 화수분 같은 사랑의 우러나옴이다.

 이제 코스모스가 지고 나면 겨울이 오겠지. 그렇게 해를 거듭하며 휘돌고 곱돌아 오늘 여기 섰다. 나도 시아버님처럼, 내 어머니처럼, 한 그루 나무 되어 품에서 빠져나간 자식들을 묵묵히 기다린다. 때마다 시(時)마다 그리움은 깊어가고 세월은 말없이 잘도 흐른다. 오늘도 내일도 된장 간장 묵어가듯 세월을 익히고 삭히며 그리움을 쌓아간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매거진 in 충북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세종충북지회장 인터뷰

[충북일보] 지난 1961년 출범한 사단법인 대한가족계획협회가 시초인 인구보건복지협회는 우리나라 가족계획, 인구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오며 '함께하는 건강가족, 지속가능한 행복한 세상'을 위해 힘써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조경순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장을 만나 지회가 도민의 건강한 삶과 행복한 가족을 지원하기 위해 하고 있는 활동, 지회장의 역할, 앞으로의 포부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봤다. 조경순 지회장은 "인구보건복지협회 충북세종지회는 지역의 특성에 맞춘 인구변화 대응, 일 가정 양립·가족친화적 문화 조성, 성 생식 건강 증진 등의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33년 공직 경험이 협회와 지역사회의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일에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충북도 첫 여성 공보관을 역임한 조 지회장은 도 투자유치국장, 여성정책관실 팀장 등으로도 활약하고 지난 연말 퇴직했다. 투자유치국장으로 근무하면서 지역의 경제와 성장에 기여했던 그는 사람 중심의 정책을 통해 충북과 세종 주민들의 행복한 삶과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 비상임 명예직인 현재 자리로의 이동을 결심했다고 한다. 조 지회장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