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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영덕 블루로드 B 코스로 접어들었다. 포구를 벗어난 길은 바닷가를 에둘러 흘러간다. 파도 소리 들으며 호젓한 산길을 지나니 해안 바위산이 기다리고 있다. 바위 등을 타고 넘어야 하는 험하고 거친 곳이지만, 난간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절벽을 따라 나 있는 길은 또 다른 절벽 앞에서는 계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무릎이 시원치 않은 나는 일행에게 누가 될세라 힘을 모아 앞자리를 고수한다.

"커피타임입니다."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비로소 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내가 지나온 길이 보인다. 소나무 그늘의 편편한 흙길도 있지만, 바윗길 계단길이 아슬아슬하다. 길에 잇대어 펼쳐진 바다는 너무 잔잔하여 호수 같다. 몇 척의 배가 바다 위를 떠다닌다. 푸른 바다의 품속에 포근히 안겨 한가롭게 노니는 듯 보이지만, 저 배들도 지금 열심히 바닷길을 가는 것이리라.

내가 지나온 저 길이 나의 인생길과 흡사하고 생각해본다. 오르고 내리고를 많이도 반복했다. 길을 가다 보면 평탄한 길도 있고 굽은 길, 터널도 만나게 된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별난 모습을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길을 간다는 것은 걷거나 달려서 가는 것이라고 알았다. 힘에 부치면 기어서라도 자기 힘으로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한데 남편은 운신도 못하고 누워서 인생길을 가고 있다.

가슴이 미어질 때는 눈물을 흘릴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울어지지도 않아 눈길 빗길을 허영허영 걷기만 하였다. 가슴에 얹힌 바위산을 밀어내지 못하여 심장이 아프게 조여 왔다.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느냐고 위에 계신 분을 향한 항변이 솟구쳤지만, 폭풍우 뒤편에 있는 찬란한 햇빛에 최면을 걸며 나아가는 발짝마다 기도가 고였다.

P 병원 503호실 6호 침대 위에서 우리 부부는 저녁 밥상을 마주한다. 잡곡밥에 국 그리고 한 젓가락씩 담긴 몇 개의 반찬이 전부이지만, 영양사님이 머리를 짜내서 만든 영양식이기에 다 먹어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어 돌나물이다. 우리 밥상에 봄이 올라왔네. 정말 맛나게 무쳤는걸. 이것 먼저 드셔봐."

"여보 이 파래무침 향이 너무 좋은데. 바다 냄새가 폴폴 난다니까."

음식 하나하나에 의미를 가하며 호들갑을 떠는 늙은 아내에 노력이 가상하여서 한 젓가락씩 집어가는 남편의 손은 굼뜨기는 하지만 이제 흘리지는 않는다.

남편은 감옥 같은 병실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걷는 연습을 한다. 감옥에 갇힌 사람에게 출소의 가장 큰 의미는 혼자 어디든 다닐 수 있는 권리라고 했다. 병원 밖으로 나온다는 의미도 마음대로 '걸어 다닐 수 있는' 자유가 아니던가. 너무나도 당연한 가치이기에 잊고 살았나 보다. 혹독한 겨울이 가고 봄을 시샘하는 매서운 꽃샘추위도 가고 여름이 무르익을 무렵에야 남편은 지팡이에 의지하고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

그렇게도 빛나든 푸름이 다 사위어 가도 일상에서 초연해지는 것이 '늙음'의 은총인가. 만용이 사라지고 과욕이 씻기어 나가니 젊은 시절과는 다른 연민의 눈빛으로 마주하게 된다. 인생은 어떤 정해놓은 목적지를 가는 것이 아니라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돌아보니 삶의 과정 자체가 인생에게 주어지는 보상이었다.

길은 험하고 힘은 달리지만, 보상받은 시간이라는 말에 희망을 품는다. 사람은 행복하기로 마음먹은 만큼 행복해진다지 않던가. 걱정 없는 삶이나 안전한 삶은 길 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잠시 쉬면서 우리 부부의 남은 길을 가늠하고 다시 힘을 내서 저 미래로 발을 내딛어야 하리라.

빛살이 비끼는 바다 위에 작은 배 한 척이 한가롭다. 바다에 안기어 떠가는 그에게서 살짝 부러운 시샘이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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