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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아버지를 지칭하는 한자 '父(부)' 자의 상형 해석은, 도끼를 들고 짐승을 잡는 모양이라고 풀이하기도 하고 손에 회초리를 들고 있는 형상이라고도 한다. 도끼든 회초리든 사사로운 자애보다는 법이나 공권력 같은 엄한 질서의 이미지를 띤다. 어느 집이나 별반 다르지 않겠지만, 우리 집에서 아버님의 말씀 한마디는 곧 법이었다. 아버님 생신은 온 동네가 함께하는 잔치였고 아버님 기일은 40주기가 지나도록 집안의 가장 큰 행사로 모셔지고 있다.

이 봄에도 아버님 기일을 준비하며 가신 분을 향한 연민에 울컥한다. 우리 아버님은 누구보다 농사를 잘 지으시는 근면한 농부이셨다. 일찍이 비닐하우스 작물을 재배하여 알찬 수확으로 해마다 땅을 늘리는 분이셨다. 그러자니, 자식들도 빈둥거리며 노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학교에 가기 전에는 꼴이라도 한 망태 베어다 놓아야 하고 방과 후에도 집안일을 도와야 했다니 한창 놀고 싶은 자식들은 아버지와 마주치는 게 싫었을 것이다. 나 역시 아버님과 마주치면 가슴이 털컥 내려앉곤 했다.

아버님의 권위로도 어찌해볼 수 없는 일은 어머님의 건강이어서 내가 결혼하자 부모님이 앞마을로 분가를 하시게 되었다. 효를 주요 덕목으로 아시는 분이 새 며느리에게 부모님을 맡겼으니 얼마나 마음이 편치 않으셨을까. 아버님은 좋다는 약이나 음식은 무조건 사 오셨다. 겨울이면 새벽에 오셔서 가마솥에 물을 덥혀 놓으시고 화로 가득 불을 담아 할아버님 방에 들여놓으셨다. 부모님을 위하고 새 며느리를 위하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졸음이 쏟아지던 새댁 시절 첫새벽에 벌떡 일어나야 하는 건 고문과도 같았다. 시도 때도 없는 아버님의 출현에 긴장하여 발소리만 들려도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뿐만 아니라 중풍에 치매까지 겹치신 할아버님의 엉뚱한 소리에도 나를 나무라셨다. 아기 같아지신 할아버님 역성을 드느라 부러 그러시는 거 모르지 않으면서도 야속했다. 이렇듯 아버님은 당신 나름대로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 가족 중 누구와도 살갑지 못하셨다.

아버님 말년에 얼마간 우리 집에 계신 적이 있었다.

아침에 남편과 아이들이 나가면 아버님과 둘이 있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그렇다고 옆집으로 마을을 갈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시장과 주방을 서성이며 효부(·)의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곤 했다. 그날도 주방에서 무언가를 하는데 방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누가 오셨나 하고 살펴보니 TV에서 아나운서가 인사를 하니 답례를 하고 계셨다. 얼마나 심심하고 답답하셨으면 TV 화면 속의 아나운서와 트고 지내는 사이가 되셨을까· 자식이 여럿 있다지만 정작 아버님 곁에는 텔레비전만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우리가 아버님 댁에 간다고 하면 시간이 되기도 전부터 마중 나오셔서 기다리다가 막상 도착하면 늦게 온다고 역정을 내시던 비합리가 비로써 이해되는 느낌이다. 나는 아버님과 만날 때마다 좋은 음식을 해 드리는 일을 효도로 알고 살았다. 주방에서는 바쁜데 아버님 방에 한참씩 머무는 동서가 못마땅했었다. 인사만 하고 나올 일이지 웬 수다냐고 했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동서가 옳았다. 아버님은 음식보다 말동무가 더 절실하셨다.

아버지라는 그 막중한 자리를 지키기 위해 힘들어도 외로워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허구한 날 헛기침으로 무게를 잡고 사신 아버님!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온 속 깊은 사랑을, 오순도순 정담으로 풀어내고 싶으셨을 텐데 좀 더 일찍 다가가지 못해 죄스럽고 안타깝다.

나는, 말할 사람이 옆에 없어 혼잣말하시던 아버님의 공허한 마음을 인제 와서야 아프게 공감한다. 그래서 외로움이 무엇인지 모르던 우리 모두를 대신하여 죄송하다고 뒤늦은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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