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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1.29 17:35:04
  • 최종수정2019.01.29 17:35:04

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소년과 만날 시간이 다가오자 살짝 긴장됐다. 옷매무시를 바로 하고 립스틱을 고쳐 발랐다. 표정은 온화하게, 그러나 결코 허술해 보여서는 안 된다. 어떤 친구일까· 첫 번째 인사로는 무슨 말이 좋을까. 그러던 찰나, 전화기가 울렸다.

내가 만나기로 한 소년이다. 내심 뭔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ㅇㅇ이예요. 오늘 선생님과의 약속을 못 지킬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가요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이 잘렸어요. 지금 병원에 가고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소리가 빠르게 지나갔다. 무슨 일이람. 후드득 공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얼마나 다치셨어· 어느 병원으로 가는 거니·" 나는 당황하여 허둥댔다.

"아직은 잘 몰라요. 회사직원들하고 같이 가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새내기 심리상담사 때 일이다. 법무부에 범죄 예방 위원으로 위촉되어 첫 번째로 연결된 보호관찰대상 소년과의 통화내용이다. 처음부터 쉽지 않은 상황을 만났다. 얼마나 놀랐을까. 안타까웠다.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주소를 들고 찾아갔더니 집에는 할머니만 계셨다. 행여 모르고 계실 수도 있겠다 싶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이야기를 다 들어보지도 않고 대뜸 이렇게 말씀하셨다.

"애비 금방 점심 먹구 나갔어유. 손가락은 하마 몇 년 전에 잘렸구유."

나는 그만 허탈함에 주저앉을 뻔했다. 소년의 영악함은 배신감과 연민을 동시에 느끼게 해 주었다.

소년은 자칫 유혹에 빠지기 쉬운 나이에 절도에 연루되었다. 교도소나 기타 시설에 수용되지는 않았지만, 보호관찰 대상자로 일정 기간 감독과 지도를 받아야 하는 일이 죽기보다 싫었을 것이다. 담당자를 무조건 거부하고 싶은 마음 잘 안다. 하지만, 녀석의 대책 없는 무모함에 기가 질린다.

그러나 한편, 보호받고 사랑받아 마땅한 아이인데 어쩌다가 세상에 내몰려 비행소년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되었단 말인가. 사회는 하고많은 비행청소년을 만들어 내는 데에는 속수무책이면서 오직 결과에만 회초리를 든다.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진심은 통한다 했다. 나는 진심으로 믿어주고 공감해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내 예상과는 늘 다르게 갔다. 어린 싹은 자라기도 전에 냉혹한 현실에 이미 생명력을 놓아버렸는지도 모른다. 충분히 녹일 수 있겠거니 생각했다. 황량한 들판에도 봄이 찾아온다는 것을 믿게 해 주고 싶었다. 그러나 의욕만 앞섰지 사랑의 기술이 턱없이 부족했나 보다. 끝내 그 소년을 봄의 문턱까지 인도하지 못하고 전문 교도관에게 인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쉽지 않은 인생에 또 다른 가해자가 된 느낌이어서 자책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첫 번째 실패로 포기하기에는 내 안에 봄을 그리는 마음이 너무 강했다. 다시 봄을 열어야 했다. 다행히 그 뒤로 내가 맡은 청소년들은 보호관찰 기간을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이제 그 친구들은 사회에서 땀과 눈물로 봄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며칠 있으면 입춘(立春)이다. 어느 시인은 입춘을 일컬어 '겨울에 부르는 봄노래'라고 했다. 아직도 날씨는 겨울의 한복판이다. 그래서 더욱더 반가운 절기이다. 입춘이 되었다고 성급하게 옷을 얇게 입었다가는 독한 감기에 시달리기 일쑤이다. 그렇다고 봄소식을 늦출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누구나 다 봄을 느낄만할 때 전하는 것은 이미 봄소식이 아닐 테니까.

나는 겨울의 한복판에 서면 봄노래가 부르고 싶어진다. 상처받은 내 '첫 소년'처럼 현실에 절망하는 이들에게 봄노래만큼 절실한 것이 어디 또 있을까.

오늘도 나는 봄노래를 부른다. 소년에게 다 들려주지 못한 안타까운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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