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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6.18 17:43:40
  • 최종수정2019.06.18 17:43:40

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우리 부부는 대전 현충원을 찾았다. 친구의 비문을 말없이 쓰다듬던 남편은 퀭한 눈을 허공에 둔 채 넋이 나간 듯하다. 반백의 머리 위로 햇살이 쏟아졌다.

"제수씨 접니다."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항상 쾌활했다. 그는 친구들 간의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분위기 메이커였고 귀찮은 연락은 도맡아 하는 전령이었다. 보훈병원을 제집처럼 드나들면서도 고통이란 친구가 하나 더 생겼다고 허허 웃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촌뜨기 남편이 서울로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처음으로 사귄 친구가 이 친구란다. 객지 생활이 외롭고 배가 고프면 "어머니 밥 좀 주세요." 하며 대문을 밀치고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친구 집이었다고 한다. 피붙이 못지않게 흉허물이 없는 사이였다.

둘은 비슷한 시기에 군에 갔고 월남파병부대에 소속되었다. 훈련 막바지에 다친 남편은 대열에서 제외되고 그 친구는 '맹호부대' 용사가 되어 전선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는 그 전쟁에서 총상을 입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화염방사기의 화염을 안듯이 맞았다고 한다. 상처를 안고 평생토록 국가유공자로 살아가는 친구의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남편의 심정은 얼마나 민망하고 괴로웠을까.

독신을 주장하던 그는 40이 되어서야 오랫동안 함께 근무한 직장동료와 결혼하였다. 참 잘됐다고 기뻐하며 마음을 놓았는데 1년여 만에 헤어져 평생을 홀로 지냈다. 겉으로는 멀쩡하고 활달한 오지랖 넓은 사람이지만 실상 전흔의 아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가여운 남자였다. 오랜 세월 웅크리고 있던 마음을 가까스로 열어 그녀를 받아드렸는데 너무 쉽게 끝나버려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홀가분하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지만 진심이었을까· 아마도 시린 이를 다독이는 슬픈 독백이었으리라.

부음을 듣고 달려간 남편은 흘러내리는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청운의 꿈을 안고 동문수학하던 저들의 한결같은 우정은, 금세 달아오르는 연인들 사랑처럼 호들갑스럽지 않고 피붙이에 대한 정처럼 눈을 멀게 하지도 않는 진정 신뢰를 바탕으로 한 끈끈하고도 아름다운 교류였다.

장례예식장 분위기는 한산했다. 아내도 자식도 없는 빈소엔 고인의 여동생과 조카들이 상주자리에 서 있고 몇몇 친구가 한쪽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을 뿐이었다.

고인은 교육공무원에 몸담아왔다지만 이런저런 인맥을 찾아 부음을 전할 가족이 없으니 몇몇 친구들이 조객의 전부였다. 부의함 입구가 테이프로 봉해있어 고인의 여동생에게 부의금을 내밀자

'오빠! 이렇게 와 줘서 감사해요. 남기고 가신 것으로도 충분하니 염려 마세요.'라고 하며 극구 사양했다.

생전의 그답게 깔끔한 마무리가 가슴을 저리게 했다. 한자리에 앉은 그의 여동생은 '오빠라도 한번 안아봅시다.' 하며 남편의 목을 끌어안고 울음을 터트렸다. 친구 동생을 다독이는 남편의 등도 파도쳤다.

고인은 국가 유공자란 미명으로 평생을 외롭게 살았다. 한데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고엽제 후유증으로 발병한 폐암으로 고통 받다 세상을 떠났다. 그가 지고 가야 했던 고통과 한을 누구와 나눌 수 있었단 말인가· 부모 형제도, 친구도, 국가와 민족도 대신할 수 없는 그만의 아픔이었다. 흔들리는 의식의 귀퉁이에서 끊임없이 표류하게 했던 전쟁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속절없이 죽어간 초병들은 흔적도 없고 오직 전쟁영웅만 있을 뿐이라는 말이 귓가를 돈다. 그럼에도 그는 위트와 유머로 아픔을 녹여내면서 오직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다 훌훌 떠나갔다.

국가는 그에게 진 빚을 평생 갚는다고는 했지만 정작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현충원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목에서 자꾸 뒤돌아보는 남편의 눈에는 사랑보다 진한 우정이 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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