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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록

한국교통대 중국어전공교수

우리 한자음으로 '성도'라고 읽는 중국 쓰촨성의 청두는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이를테면, 푸바오가 가 있는 팬더 번식기지, 제갈공명의 사당인 무후사와 유비의 묘, 무후사 인근의 옛거리인 '진리(錦里, 금리)', '좁은 골목길과 넓은 골목길'이라는 의미의 '콴짜이 샹쯔'. 또 대략 3천 년 전 문명의 유적지인 진사춘(金沙村, 금사촌) 유적지, 도교사찰인 청양궁 등. 여기에 또 '두보초당' 공원이 있다. 우리나라의 정우성과 까오 위엔위엔이라는 중국 배우가 주연한 <호우시절>이라는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제주도 피난 시절의 이중섭 화가처럼 친구에게 잠깐 집 한 칸 빌려서 살았던 곳이니 '초당'은 그냥 초가집 한 채이지만, 중국 정부는 여기에 6만 평이 넘는 공원을 조성하였다. 이 두보초당 공원은 '완화계 공원'이란 곳과 바로 이어져 있다. 이 공원의 주인공은 완화부인이지만, 사람들에게는 설도(薛濤:768~832)라고 하는 위대한 시인이 거주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청두에는 외지 여행객들이 많이 찾지 않지만 정말 가볼 만한 곳으로 '망강루 공원'이 있다. 쓰촨대학 세 곳의 캠퍼스 중 대학본부가 있는 망강캠퍼스 바로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이야말로 설도를 기념 하는 공원이다. 그런 만큼 그 속에는 설도의 기념관, 가묘와 동상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설도의 진짜 묘는 원래 쓰촨대학 구내에 있었는데,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에 홍위병들이 허물어버렸다.

한편 망강루공원은 대나무 공원이라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설도는 생전에 대나무를 좋아하였는데, 이 점을 기려 중국 국내외 200여 종의 대나무로 공원을 조성한 것이다. 그래서 공원을 산책을 해 보면 잠시나마 대나무가 주는 시원하면서 그윽한 정취에 빠질 수 있다.

설도는 원래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에 살았지만, 하급관원인 부친을 따라 청두로 오게 되었다. 설도가 대략 7~8세 쯤이었던 어느날 밤, 부친이 뜰에 자라 있는 오동나무가 새삼 크게 느껴져서 싯구 두 구절을 읊었다.

"뜰 한 켠에 한 그루 옛 오동나무, 우뚝 솟아 구름을 뚫고 들어갔네."

그래 놓고 뒷 구절을 뭘로 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곁에 있던 어린 설도가 바로 시를 이었다.

"가지는 남북으로 오가는 새들을 맞이하고, 잎사귀는 오가는 바람을 환송하네."

설도가 지은 이 싯구는 조선시대에 서당 학동들이 공부하던 교재인 <추구(推句)>에도 실려 있을 정도의 명문이다. 그러나 역사란 결과론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인지라, 흔히들 설도는 향후에 결국 악기, 즉 악기를 연주하는 기녀가 되는데, 이 문구가 씨가 되었다고들 하기도 한다.

설도는 우리나라의 황진이를 떠올리게 한다. 둘 다 외모가 빼어나고, 학식이 뛰어났으며, 천부의 문학적 재능을 지녀 당대의 문인들과 두루 교류하였고, 악기라는 신분의 한계 속에서 행복도 불행도 모두 맛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볼 땐 그래도 설도가 좀 더 행복할 듯하다. 그녀는 '교서랑'이란 별칭이 있을 만큼 그 시대부터 '기녀'라기 보다 문학가로 더욱 인정받는 경향이 있었던 반면 황진이는 기녀라는 낙인이 더욱 강했다. 이것은 세상이나 남성을 대하는 두 사람의 태도에서도 원인이 있었겠으나, 사회 문화의 차이가 더욱 컸을 것이어서 안타까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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