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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학교역사가 말한다 - 음성 수봉초등학교

1911년 6월 신립 광명학교로 개교… 조종하와 남궁모가 광명학교로 합류
조종하, 2대 학감 후 군수 서리 자리… 남궁모 3대 학감으로 개화교육 진력

  • 웹출고시간2015.08.06 19:21:07
  • 최종수정2015.08.17 14:54:31
[충북일보] 음성군에서 가장 역사 깊은 학교는 수봉초등학교이다. 1911년 6월에 개교한 수봉초등학교의 뿌리는 신립 광명학교로 '음성학교'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신립 광명학교가 설립되기까지의 역사적 배경과 일제강점기 속에서도 음성이라는 곳의 개화를 서두르고 근대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앞장섰던 선대 음성교육의 선각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1957년 5월10일부터 1968년 2월28일까지 11년여 동안 수봉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안호경 교사가 엮은 '더듬어 본 음성'이라는 책자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현재 수봉초 교사 전경

이 책자에 따르면 이조의 국교인 유교는 대중성이 못되고 일부 특권층에만 한정되어 실생활과는 멀리 공리공론으로 갑론을박하며 정치인으로 하여금 국사를 교란케 하여 민생을 토탄에 떨어뜨리게 했다는 것이다.

이에 반기를 든 1894년의 동학혁명은 국내적으로 깊은 잠속에든 이 민족을 각성시키는 좋은 계기가 되고 갑오경장과 함께 조국의 근대화 과정의 촉진제가 되어 1905년에 한성법학교를 비롯한 양정의 설립, 보성학교 설립이 지방으로도 신식학교 설립을 재촉하게 되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개화되어 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급기야는 음성에도 본향 의령 남씨 출생 남석인(사천 현감·군수·삼수부사·아주영장·청주목사 등역임)이 나서 고령임에도 후손과 향토의 개화를 서두르고자 각리의 서당에서 배우는 학동을 비롯한 지면 인사의 자제들을 반 강제로 약 40명을 데려다 가르쳤다. 이 책자에 따르면 남씨는 당시에 반일 감정에 사로잡혔을 때였다고 부연하고 있다.

현 시장통에 소재한 중국인 왕빙형 가의 안채를 교실로 쓰고 시장통을 운동장으로 사용했다. 이 학교명이 바로 신립 광명학교였다. 1907년 (일본 명치 40년) 8월10일부터 전문학교 정도로 지도하게 되었으니 그 당시의 학동의 기초는 서당에서 이수하였으므로 중복되는 점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때 낙향 인사로 승지를 지낸 바 있는 조종하(소론)는 남궁모와 같이 서울에서 본향인 삼성면으로 해서 현 평론에 와서 자리잡고 마당과 대청에서 약간 명의 학동을 모아 신식 교육을 실시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광명학교로 합류하게 됐다.

조종하는 광명학교 2대 학감으로 있었다. 그 다음으로 음성군 군수 서리라는 자리에 앉게 됐다. 음성, 괴산, 청안, 연풍 등 4개 군의 치안을 담당하던 남궁모는 3대 광명학교의 학감으로서 수인의 교관과 같이 개화교육에 진력했다고 전해진다.

교육의 재원은 향교 재산인 음성군 음성읍 감우리의 전답과 성주사 불양답에서 년 50석을 받아 충당 사용하였다. 이때 관리하던 사람은 연촌(역말)에 거주하던 신태진, 신성일이었다. 교관의 월급은 1인당 7원(당시 쌀 한 말에 15전~20전)이었다.

음성 / 남기중기자 nkjlog@hanmail.net
◇ 변천

1911년 6월 21일 음성보통학교로 설립 인가를 받았으며 같은 해 9월 21일 개교

1911년 11월 1일 교육령 실시와 함께 음성공립보통학교로 개명

1920년 9월 여아(女兒)의 입학 희망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여자 학급 증설

1921년 4월 1일 6년제로 학년 연장을 인가 받았으며 1938년 4월 1일 음성 제2심상소학교로 명칭 변경

30~40년대 수봉초 교사

1941년 4월 1일 음성수봉공립국민학교로 개명됐다가 1942년 4월 1일 음성수봉국민학교로 명칭 변경

1968년 3월 1일 17학급을 남신국민학교로 분리. 수봉국민학교는 26학급으로 편성

1996년 3월 1일 수봉초등학교로 명칭이 변경

2013년 2월19일 제100회 졸업식을 거행해 총 1만6천129 명의 졸업생을 배출

◇ 교육활동

1954년부터 1957년까지 충청북도 지정 단원학습 연구학교 운영

1966년 비진학생의 과외 활동을 통한 실기 지도 주제 충청북도 지정 연구학교 운영

1967년 문제 학습에 의한 국어과 지도법 연구라는 주제 충청북도 지정 연구학교 운영

50~60년대 수봉초 교사

1977년 충청북도 교육위원회 지정 소질 계발 연구학교 운영

1981년 충청북도 음성군 지정 특별활동 시범학교 운영

1985년 충청북도 교육위원회 지정 국민정신교육 시범학교 운영

1986년 충청북도 교육위원회 지정 자체장학 시범학교 운영

1991년 충청북도 교육청 지정 진로시범학교 운영

1996년부터 1998년까지 교육부 지정 인성 교육 자율 시범학교 운영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충청북도 지정 체육교육 시범학교 운영

1980년 정구부 창단

1987년 5월 26일 전국소년체전 연식 정구 국민학교 여자부 도 대표 출전 동메달 획득

1990년 9월 7일 체육부장관기 차지 전국 연식정구대회 국민학교 여자부 도 대표 출전 단체전 3위와 개인전 1위에 입상

1993년 4월 17일 충북도 소년체전 여자 연식 정구 우승

70~80년대 수봉초 교사

1994년 5월 30일 제23회 전국소년체전 여자 정구 준우승

1994년 9월 13일 제20회 문화관광부장관기 차지 전국 시도대항 국민학교 정구 여자부 단체전 우승

1997년 제26회 충북소년체전 여자 정구부 단체전 우승

2003년 제20회 회장배 및 시장기 정구대회 준우승

2006년 대통령기 차지 전국대회 우승

2007년 대통령기 전국 정구대회 여자 초등부 단체전 우승

2009년 제38회 전국소년 체육대회 정구 여초부 3위

2011년 제40회 전국소년 체육대회 여초부 정구 우승

<인터뷰> 정인악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장

일제강점기에 음성 수봉공립학교를 다녔던 정인악 위원장은 세계2차대전이 발발한 지 얼마되지 않은데다 왜정때여서 군용 비행기 기름으로 쓰이는 소나무 송진을 짜 내는 일을 매일같이 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고 회고했다.

이때는 10살도 채 되지 않은 저학년이였는데도 군사훈련을 시켰고, 교사도 군복을 입고 있고 수업을 했을 정도였다고 당시 학창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이런 시기가 계속되다 4학년때 해방이 됐다고 전했다.

1945년 해방이 된 해 음성 수봉공립학교는 한 학년에 3개 반이 있었고, 남자 2반, 여자 1반으로 나눠져 한 학년이 모두 200여명이었다.

정 위원장은 알려지지 않은 수봉초 강당에 대한 비하인드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정 위원장이 학교를 다닐때도 강당이 있었다. 음성지역 유지였던 유중환과 박해일이 "왜정치하에선 교육을 강화해 민족혼을 길러야 한다"며 자신들의 전답 100마지기를 팔아서 목조 강당을 지었다고 한다. 이때 유중환 5천엔, 박해일 5천엔, 교비 1천엔 등 모두 6천엔을 들여 목조 강당을 신축하게 됐다.

이 강당은 50여년 동안 개보수 공사를 수차례 걸쳐 유지해 오다 1994년 그 수명을 다해 허물게 됐다. 이때 정인악 위원장이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었고 당시 민태구 국회의원이 친구였던 터라 강당 신축을 건의했다고 한다.

민 의원은 당시 김숙희 교육부장관을 지역에 초청해 식사자리를 마련하게 됐고, 이 자리에서 "음성에서 유서 깊은 강당이 허물어지게 됐다"며 "강당을 새로 지을수 있도록 교부금을 내려보내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김 장관은 "고향 초등학교에 강당을 지어달라고 부탁하는 국회의원은 처음봤다"며 흔쾌히 7천만원을 보내줘 전국 최초로 국비로 강당을 짓게 됐다고 한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전국의 학교 강당을 국비 지원을 받아 짓게 됐다고 정 위원장은 전했다.

정 위원장은 "1995년 12월1일 강당 신축 준공을 기념해 비문을 세웠는데 이 비문에 민태구의 이름 석자가 새겨지지 않아 지금까지도 아쉬운 마음"이라며, "당시 선거법에 저촉된다고 하여 학교측의 반대로 새겨 넣지 못했는데 지금이라도 후학들이 민태구라는 이름을 기억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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