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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세상은 불공평하다. 난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렇지만 60년을 살아 보니 세상은 공평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곧 사람 위에도 사람이 있고, 사람 밑에도 사람이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기업체에선 직원은 대리나 팀장의 명을 받고 다시 대리나 팀장은 과장, 과장은 부장, 부장은 이사, 이사는 사장의 명을 받는다. 엄격한 상명하복의 관계 가운데서 조직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이런 위계관계로부터 벗어나면 상사의 눈 밖에 나고 그러면 인사 평가, 연봉 책정, 승진 평가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도가 지나치면 잘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상사는 나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어떤 면에서 나는 상사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상사나 내가 동등한 권한을 갖고 있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건 형식이나 명분상으로 그럴 뿐이고 을의 입장에서 그런 주장을 하기는 쉽지 않다. 나의 생존권을 쥐고 있는 사람 앞에서 목을 내놓고 할 이야기를 또박또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른바 갑 앞에서 을은 머리를 조아리며 초라해질 수밖에 없고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어떤 조직이냐에 따라서 상하를 나누는 기준은 물론 다르다. 군대는 계급으로 상하관계를 나누며, 관료사회는 직위에 따라, 정치집단은 권력의 유무에 따라, 특히 기업체의 경우는 자본의 소유여부에 따라 상하관계, 곧 갑을 관계가 결정된다. 돈, 권력, 명예 등의 기준에 따라서 갑을관계가 형성된다.

을의 처지에 있는 사람의 삶은 고달프다. 땅콩과 같은 사소한 문제로 비행기를 되돌리라는 부사장의 명이 부당한 걸 알지만 갑에게 저항하는 순간 목줄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회항하는 기장, 승객에 대한 사법권을 갖고 있음에도 거꾸로 승객의 명령에 따라 비행기에서 내려야 하는 사무장, VIP 고객 모녀 앞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백화점 주차관리원들은 을의 곤궁한 처지를 잘 반영해준다. 이런 식으로 을의 삶은 고달프고 피곤하다.

따라서 사람들은 기를 쓰고 갑의 위치에 서고자 한다. 직장에서는 승진에 목을 매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오만가지 방법을 다 동원한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갑의 위치에 서서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는 건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을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잘 통솔해서 조직발전에 이바지하는 건 삶의 과정에서 필요하기도 하다.

그렇지만 갑의 위치에 서게 되었다고 전횡을 일삼는 건 곤란하다. 내 아버지 회사이고 나도 부사장이라는 직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 훈련 차원에서 회항을 해서 사무장을 내리게 한 게 뭐가 잘못된 일이냐는 대한항공 부사장의 항변에 국민들은 분노하였다.

대다수 서민들은 을의 처지에 있다. 그들은 갑의 권력행사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 그럼에도 도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면 들불처럼 들고 일어난다. 들불처럼 들고 일어나는 분노한 민심의 위력은 어떤 갑질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다. 땅콩 부사장의 갑질에 대한 국민의 분노로 소속 항공사의 재정 손실이 1조에 가깝다고 하며 본인은 구속되어 차가운 감방에서 죽을 고생을 하고 있다.

을이라고 만년 을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을의 처지에 있지만 모든 걸 다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 법이다. 갑의 권력행사가 지나치면 갑을 관계 자체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법이다. 을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하여 횡포를 부리는 갑들이 기억해야 할 한 마디가 있다. 갑이 되려면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곧 내 밑에도, 내 위에도 사람이 없다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야 갑이 될 자격을 갖추게 된다. 인격적인 계급이란 건 없다는 걸 알아야 갑이 될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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