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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3.04 13:46:02
  • 최종수정2015.03.04 13:46:00

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학창 시절 대부분의 학생들은 한두 개 정도의 스터디 모임에 참여하고 있었고, 농땡이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독 모임에 참여하던 중 옆의 후배 여학생을 흘깃 보니 당시 유행했던 배트맨 영화 속의 사진을 놓고 노트에 그걸 그리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어릴 적 수재라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고 한다. 그렇지만 난 그 여학생이 한심했다. 나는 어릴 때 배트맨 만화를 보고 자란 세대였다. 그래서 배트맨 그림을 그리고 있는 여학생을 보면서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배트맨이라니' 하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뒤풀이에 가서 그 여학생에게 물었다. "너는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배트맨(만화)에 빠져서 사냐? 그런 건 어릴 때 졸업을 했어야지"

그 여학생은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면서 다음처럼 대꾸하였다. "형(그 당시 여자 후배들은 남자 선배를 형이라고 불렀다), 배트맨은 더 이상 만화가 아니고 새롭게 창조된 문화야. 고품질 영화니까 형도 한 번 봐봐." 며칠 후 그 영화를 봤다.

유치한 만화라고 생각했던 배트맨을 이렇게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배트맨 영화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의 싸움이라는 단순 구도를 갖고 있다. 그렇지만 배트맨(마이클 키튼)과 조커(잭 니콜슨)의 싸움은 더 이상 단순한 선과 악의 싸움이 아니었다. 이른바 문화적으로 세련된 캐릭터 사이의 미묘한 갈등과 대립, 충돌을 액션을 통해서 그려내고 있었다.

배트맨은 부잣집 도련님이지만 비명에 부모를 잃은 슬픈 운명을 가지고 어둠(굴) 속에서 살아간다. 어둡고 음울하지만 세련된 신사로 질서를 상징하는 캐릭터가 배트맨이다. 반면에 악당으로 등장하는 조커(잭 니콜슨)는 일단 얼굴이 망가졌기 때문에 말끔한 신사가 될 수 없다. 생김새는 악당처럼 흉하다. 그런데 이름처럼 그는 광대로 분장하고 나타난다. 그리고 일단은 경망스러울 정도로 까분다.

배트맨을 보고 있노라면 내면적인 진지성이 느껴진다. 일단은 멋이 있지만 음울한 기운이 느껴져 조금은 답답하다. 어둡고 진지한 고품격 신사(dandy man)가 배트맨이다. 배트맨은 바른 생활의 사나이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능력과 힘을 감추고 사는 고전적(classical) 신사로 질서를 상징한다. 그는 정의의 수호자이지만 젊은이들에게는 엄청 답답한 인물이다. 강독시간에 배트맨과 조커의 그림을 그리고 있는 후배 여학생에게는 특히 갑갑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조커를 보고 있노라면 괜히 흥이 겨워지고 다음에는 무슨 행동을 할까 기대가 된다. 플루겐하임 미술관에 가서 값비싼 고전 그림을 망가뜨리는 페인팅을 시작한다. 렘브란트, 드가에 페인트를 뿌려 망가뜨리고, 고전적인 조각을 망치로 깨부수는 등 고전적인 사실적 질서를 파괴하는 혼란(chaos)을 대표하는 인물이 조커다. 잭 니콜슨이 갖고 있는 코믹하지만 잔인한 캐릭터와 결합하여 조커는 웃기고 즐겁지만 겁나는 악당으로 등장한다.

영화 배트맨을 보고 나서 그 여학생보다 내가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배트맨=권선징악의 구도를 갖고 있었다. 이 구도에서 보면 배트맨은 취하고 조커는 버려야 한다. 좋은 나라와 나쁜 나라를 가르는 유치한 발상이다.

갑갑하고 어두운 정의의 수호자로서 질서를 상징하는 배트맨과 쾌활하고 명랑하게 질서를 파괴하는 광대 풍의 악당인 조커의 대비를 보면서 고품격 선악의 대립을 생각하게 된다. 이 정도가 되면 악당이라도 같이 대화를 해볼 수가 있다. 나의 적이라도 이 정도라면 같이 상대해볼 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깜냥이 안 되는 적이라면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람의 심정이다. 그렇지만 세상에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은 없다. 나의 적이라도 그 나름의 가치가 있고 이유를 갖고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존중받아도 될 만한 선이고 상대는 경멸해도 좋을 악이라는 발상을 가질 수가 없다. 배트맨과 조커의 대립을 만들어낸 감독 팀 버튼은 나의 적도 나만큼의 가치와 의미를 갖고 있다는 발상이 있는 사람이다. 곧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선악 대립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나의 한심함을 일깨워준 후배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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