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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4.23 13:45:48
  • 최종수정2025.04.23 13:45:47

이효순

수필가

눈길 머무는 곳마다 초록으로 가득하다. 남편 고등학교 동문 몇 사람 내외가 모여 청남대를 찾았다. 온통 그곳은 입구부터 꽃대궐처럼 갖가지 고운 꽃들이 초록 속에 피어 있었다. 주말에 날씨마저 맑아 관람객들 역시 화사한 꽃처럼 봄옷으로 단장했다. 입구부터 만원이다. 칠십 중반을 넘은 동창생들의 모습은 노년을 향해가지만 마음은 청운의 꿈을 품었던 고교시절 그 마음인 듯 순수함이 묻어난다.

지난해 겨울에도 충주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어 이번 만남은 어색하지는 않고 반가웠다. 청남대 본건물 가는 길은 잘 자란 반송이 양쪽으로 듬직하게 보초를 서는 군대처럼 버티고 있다. 오래전 처음 방문했을 때 작았던 반송이었다. 몇십 년이 지나고 그들은 큰 나무가 되었다. 내가 고개를 들고 쳐다볼 정도로 하늘을 향해 많이 자랐다. 몇 번 관람했지만 오늘은 대통령별장을 중심으로 내부와 산책로를 돌아보았다. 내부를 돌아보는데 오래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운보의 작품도.

별장 건물 앞에 잘생긴 굵은 나뭇가지에 분홍색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모과나무 꽃이 내 눈을 가득 채웠다. 몇 번 왔지만 한 번도 못 보았던 풍경이었다. 봄처럼 화사한 분홍색 모과꽃이 별장 풍경을 훨씬 멋있게 연출해 주었다. 못생긴 모과나무의 꽃이 분홍색인 것을 몇 년 전에 알게 됐다. 흥덕사지 산책길에서 처음 접하고 놀랐던 일도 생각난다. 울퉁불퉁한 모과 모양과는 달리 부드럽고 꿈결처럼 고운 분홍색 모과꽃을 보던 일이 어렴풋이 생각났다. 현재 235년이 된 나무라고 안내판에 적혀있었다. 가을에 그 모과가 노랗게 익으면 얼마나 장관일까. 상상만 해도 설ㅤㄹㅔㅆ다. 가을에는 꼭 한번 더 찾아와 모과 달린 모습을 감상하자고 약속했다.

별장 앞에서 바라본 앞 낮은 언덕에는 초록빛 나무 사이에 분홍빛 꽃대궐을 이루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중국원산인 <꽃아그배나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과일꽃은 흰색이 주로 많은데 오늘 본 것은 모두 분홍색이었다. 그 분홍색이 얼마나 온통 초록의 정원에서 내 마음을 끄는지 자연스럽게 발길이 그곳으로 옮겨졌다. 낮은 언덕에서 두 그루가 다정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참 정겨웠다. 마치 포근한 어릴 때 살던 고향처럼 생각되었다. 다가가서 가지도 만져보고 꽃도 자세히 보았다. 나를 그 나무와 동화시키기에 마음을 기울였다.

온통 초록으로 가득한 그곳에 분홍색의 무리는 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왔다. 꽃을 유난히 좋아하는 내겐 최고의 선물이었다. 봄날이지만 여름처럼 그렇게 더웠다. 때를 잘 맞추어 관람을 하게 되어 자연의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걷는 길마다 초록으로 가득한 곳, 눈길 머무는 곳마다 싱그러운 초록이 눈 안으로 가득 채워졌다.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초록 그 자체만을 마음에 담는 것은 얼마나 건강한 하루시간인지 감사할 따름이다.

언젠가 맏이가 잠시 귀국해서 집에 머물 때 청남대를 함께 들른 적이 있다. 거의 10여 년이 훨씬 넘었다. 숲도 지금처럼 풍성하지 않았다. 한창 가꾸어 가는 중이었다. 그때 비하면 지금은 보름달처럼 흡족하게 초록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렇게 풍성한 숲을 조성한 사람들의 땀이 이곳에 있었기에 우리들은 그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인들이 오시면 꼭 이곳에 들러 이 풍경을 함께 나누고 싶은 초록의 하루다. 하늘로 쭉쭉 뻗은 초록빛 메타세쿼이아의 웅장함과 시원함이 아직도 내 눈에 가득 담겨 초록의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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