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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순

수필가

식탁에 냉이 무침이 하얀 접시에 정갈하게 놓여있다. 오랜만에 눈에 담긴 고향 모습처럼 정겹다. 주말에 고등학교 때 친구가 데쳐서 보내준 봄나물이다. 친구의 소박한 웃음과 정이 가득 담겨있어 마음이 더 따뜻해진다.

2월에 접어들어 입춘도 지났고 남녘에선 이른 꽃소식도 전해진다. 매화 봉오리도 제법 도톰해졌다. 어릴 때 입춘이 지나 이른 봄이면 봄바람의 싸늘함도 아랑곳없이 들로 나물 캐러 다녔었다. 어머니는 캐온 그 나물을 가끔은 해 먹었지만 그것도 시장에 내다 파셨다. 집에 수입원이 없으니 나물도 난전에 나가서 팔기도 하셨다. 다행히 나는 나물 캐러 가면 바구니는 꼭 채워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아직도 봄이면 가끔 나물 캐러 가까운 들로 나가고 싶다. 어릴 적 봄바람이 차서 손등은 찬바람을 쏘이면 갈라지고 그곳에서는 피가 맺히기도 했다. 춥지만 따뜻한 봄볕이 나를 방안에 가두어 두지 않았다. 넓은 들로 나가 씀바귀도 캐고 밭두둑으로 다니며 냉이도 캤다. 그 아련한 기억은 물에 씻어 살아난 냉이처럼 싱싱하다. 노년에 접어들었지만 마음엔 그때의 모습이 추억처럼 선명하다.

이십 대 초반 교사 발령을 기다리던 가을, 친구는 내 생일 때 황금색 국화꽃다발과 빈노트 세 권을 선물로 가지고 걸어서 먼 시골에 있는 우리 집까지 찾아왔다.

지금도 그 가을날을 생각하면 오래되었지만 친구의 정이 담긴 마음이 먼산에 피는 뭉게구름처럼 아련히 떠오른다. 키가 크고 눈이 선하며 청초했던 친구의 모습, 국화꽃다발과 빈노트, 오래된 기억 속에서 꺼내 본다. 그 친구를 이십 대에 만났었는데 어느덧 우린 칠십이 넘었다. 겉모습은 시간의 흐름으로 조금씩 변했지만 마음은 그 때나 지금 변함없이 순수하다.

어떤 것이든 그 사람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일들은 그리 쉽지 않다. 내가 나물을 캐 보았기에 그 일이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가는지 불 보듯 환하다. 냉이 한 포기마다 캐서 다듬고 물에 깨끗이 씻어 데치기까지. 그 사랑을 봉지에 담아 친구 딸이 우리 집 근처를 지나가는 길에 전해 주었다. 그냥 요리만 하면 될 수 있게 그렇게 정성을 들인 봄선물이었다. 양념을 넣어 맛있게 요리한 냉이무침을 저녁상에 올렸다.

남편과 함께 상큼한 냉이 무침을 반찬으로 먹으며 친구 이야기를 나누었다. 친구는 남편 다니는 서실에서 붓글씨를 쓴다. 남편은 그가 내 여학교 때 친구인지 다 안다. 그곳에서도 늘 회원들을 잘 배려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의 인연은 어찌 보면 참 자연스럽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우연히 만나게 된다. 여행이나 낯선 거리에서 만나게 되는 것을 보면…. 이십 대 후반부터의 삶은 배우자 만나고 자식들 키우고 가정을 일구는 긴 시간들이 대부분이다. 우리 친구들은 이제 칠십 대가 넘어 노년에 접어들었다. 자신의 삶을 산다. 이렇게 늦은 나이에 만나 서로 정을 나누며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생각할수록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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