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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7.04 18:09:11
  • 최종수정2024.07.04 18:09:11

송준호

우석대 문예창작과 교수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찢어진 청바지는 내다 버리거나 기워 입었다. 그런데 언제가부터는 그게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를 잡았다. 허벅지나 엉덩이 언저리까지 찢어서 신상품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셔츠나 수트의 상표도 소매나 뒷덜미 바깥에 버젓이 내다 붙인다. 처음에는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다 보니 그 또한 패션 아이템 가운데 하나가 되었지 않은가. 문장을 구사할 때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겨울이 찾아오니 / 첫눈이 내렸습니다.' 이 얼마나 당연하고도 흔한 말인가. 겨울이 오면 이 땅 어디든 첫눈이 내릴 테니까. 겨울이 찾아온 게 원인이고, 첫눈이 내린 건 결과이니까. 그렇다면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첫눈이 내려서 / 겨울이 찾아왔습니다.' 이건 고개가 갸웃거려지질 수도 있겠다. 순서가 뒤바뀌었으니까. 첫눈이 내리지 않으면 강물이 제아무리 꽁꽁 얼어도 겨울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말이니, 이런 억지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과연 그렇기만 한 걸까.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지니 / 오늘따라 그대가 간절히 보고 싶어집니다.'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지는 건 원인이고, 그대가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결과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추억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또한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일 것이다. 이걸 앞서 본 것처럼 바꿔 쓰면 이렇게 된다. '그대를 보고 싶은 내 마음이 너무 간절해서 / 이토록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이 또한 순전히 억지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비가 쏟아진 원인이 당신을 간절하게 보고 싶어하는 내 마음이라는 거니까. 누군가 그런 식으로 말하면 대뜸 이렇게 되묻고 싶어지지 않을까. "네가 뭔데?"

"얼큰한 해장국을 먹었더니 지난밤에 몽땅 마신 술이 말끔히 깨는 것 같네." 술꾼들이 흔히들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해장국이 이렇게 얼큰해서 술이 말끔히 깰 줄 알았더라면 지난밤에 술을 몽땅 마실 걸 그랬잖아?" 이런 표현은 유머 감각이 풍부한 술꾼들이나 쓸 수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광화문 거리 / 흰눈에 덮여가고 / 하얀 눈 하늘 높이 / 자꾸 올라가네' 가수 이문세가 부른 <옛사랑>의 끝부분이다. 하얀 눈이 하늘에서 '내리는' 게 아니라 자꾸 '올라간다'고 했다. 어떤가. '하얀 눈 하늘에서 자꾸 내려오네'라고 쓴 것하고 비교해 보라. 찢어진 청바지처럼 발상을 바꾼 문장이 때로는 훨씬 신선한 울림을 주고 있지 않은가.

한여름, 녹음이 짙은 느티나무 그늘 아래에서 매미가 악을 쓰고 울어대는 소리를 듣다가 안도현 시인이 쓴 시 한 대목을 뜬금없이 떠올린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 여름이 뜨거운 것이다.' 그렇다. 여름이 이토록 뜨거운 까닭은 삼복 절기가 닥쳤거나 기상이변 탓만은 아니었다. 그건 순전히 매미가 저토록 악을 쓰고 울어대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런 좀 한가한 생각을 하다가 비록 아주 오래전에 읽었어도 기억에 생생히 남아 있는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追憶)'을 떠올린다. 이건 만해(卍海)의 시 '임의 침묵'의 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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