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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표

수필가

"나는 여태껏 단 한 번도 남의 물건을 훔친 적이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대부분은 겉으로만 믿는 척한다. "아~예~, 대단히 훌륭하시네요."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뒤끝을 길게 늘어뜨리는 '아~예~'에서부터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속을 훤히 내보인다. 나와 흉허물없이 지내는 사람 중에는 "만약 네 말이 진실이라면 너는 완전한 도덕적 인간인 거다. 불완전한 인간 주제에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거냐?"며 아예 대놓고 타박하는 경우도 있다. 어쨌든, 사람들은 내가 이렇게 살게 된 원인에는 관심이 없고 그 결과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거다.

막내 이등병 때다. 중대별 체육대회에서 우리 중대가 우승한 날이었다. 중대원 전체 회식을 절정으로 우리 중대는 분위기가 매우 들떠있었다. 중대장은 기분이 좋았는지 자기가 직접 취침 점호를 했다. "막내 군장을 한 번 구경해 볼까?" 자애로운 형의 심정이었겠지만, 분위기는 금방 싸늘해졌다. "어? 이게 뭐야? 분대장! 막내 잘 챙겨야지." 덕분에 그날 밤 중대장이 퇴근하자 우리 분대는 완전군장하고 연병장을 한 시간 동안 돌았다. 그다음 날 밤부터 나는 고참들에게 별도의 특별교육을 받았다. 한 달 정도를 그렇게 지냈다. 그러다 결국엔 고참들이 지쳐 포기하고 나를 고문관 취급했다. 군장 속에 팬티와 러닝셔츠를 반드시 훔쳐다가 항상 3개씩 채워놓으라는 걸 이행하지 않아서였다.

국민학교 3학년 때다. 차표도 팔고 학습재료도 파는 '차붓집'(상호는 기억나질 않는다.)에서는 맛있는 단팥빵도 팔았다. 그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좌판에 널려있는 그 빵을 너무나 먹고 싶었다. 그렇지만 우리 집 형편상 빵을 사 먹겠다고 엄마에게 돈을 달래서는 안 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이때 한 친구가 내게 방법을 알려줬다. "훔치면 돼!" 아주 간단했다. 훔치기로 작정했다. 가게 앞 좌판에 널려있는 단팥빵 봉지를 주인의 눈을 피해 들었다가 놓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손바닥엔 땀이 흥건해졌다. 얼마만큼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 빵 봉지를 내려놓고 힘없이 발걸음을 떼는 순간, 주인아저씨가 무서운 목소리로 날 불렀다. 그 아저씨의 추궁에 주눅이 든 채로 대답했다. 훔치려고 했다가 안 훔쳤다고. 그날 나는 공짜로 단팥빵 한 봉지를 얻었다. 그날 이후 그 아저씨는 나를 보면 가끔 단팥빵 한 봉지를 공짜로 줬다.

고참들은 내게 욕을 했다. "고문관 새끼! 저 혼자 도덕적인 척하고…." 차붓집 주인아저씨는 나를 훌륭한 어린이라고 칭찬했다. 그렇지만 내가 팬티를 훔치지 않은 건 도덕적 인간이라서가 아니었다. 빵을 훔치지 못한 건 훌륭한 어린이라서가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나 자신이 무너질 수 있다는 두려움이 매일 밤 고참들에게 당하는 고통보다 앞섰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와 선생님에게 혼날 거라는 두려움이 빵을 훔쳐서라도 먹어야겠다는 욕망보다 앞섰기 때문이었다.

'두려움, 두려움, 두려움. 삶은 두려움의 연속.'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다. 내 삶이 딱 이랬다. 두려움,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내가 가진 것-돈, 사랑, 명예, 체면, 건강, 신념, 기타 등등-을 잃을까 봐서, 남들보다 덜 가질까 봐서. 선택하고 행동해야 하는 순간순간마다 두려웠다. 온갖 두려움이 모든 선택과 행동을 이끌었다. 때론 도덕적이라고 오해할 수 있게, 때론 훌륭한 것처럼 보일 수 있게. 이런 나를 혹자는 도덕적이라고 하고 혹자는 훌륭하다고 한다. 지금까지 내 삶을 이끌어 온 건 도덕적 의지, 훌륭한 인성, 이런 게 전혀 아닌데도. 진짜는 두려움인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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