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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표

수필가

복자기나무라 했다. 느티나무처럼 위풍당당하지 못하고, 플라타너스처럼 넓은 그늘을 만들지도 못한다. 소나무처럼 아취가 있지 않고, 잣나무처럼 곧은 기개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벚꽃처럼 화려하지 못하고, 아카시아꽃처럼 향기를 내지도 못한다. 도대체 똑 부러지게 잘난 구석이 없다. 그래도 뽐내고 싶은 게 있기는 하단다. 단단하단다. 그러나 박달나무만 못하단다. 단풍이 예쁘단다. 그러나 단풍나무만 못하단다. 그래서 '복자기'라 이름을 붙였단다. 이 이름은 주인공이 아니라 조연이라는 의미로, 일류가 아니라 이류라는 의미로 서로 통하는 말이란다. 이러니 어디에 쓰랴.

그런데, 놀랍게도 단양엘 가면 이 복자기나무가 아주 귀하게 대접받는다. 귀한 정도가 아니다. '관광 단양'의 상징이기까지 하다. 봄날엔 다소곳이. 가을날엔 당당하게. 버섯인가 하면 뭉게구름처럼, 뭉게구름인가 하면 소프트콘처럼 말쑥하게 단장하고서 말이다. 그 본새가 포마드를 바르고 이 대 팔 가르마를 하여 멋을 낸 -그렇지만 어딘가 촌스러운- 1930년대 신사 같다. 혹은 멜빵바지 입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한 주제에 다 컸다고 생각하는 -그렇지만 꼬맹이일 뿐인- 여덟 살 남자아이 같기도 하다. 이 때문일까. 단양 복자기나무 가로수 아래를 걷다 보면 과거가 슬며시 말을 걸어온다.

복자기나무라. 어쩜 이리도 나와 똑 닮았단 말인가. 나무로 치자면 나는 완벽하게 복자기나무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국민학교 2학년까지는 조회 때 운동장에 서 있지 못할 정도로 약했다. 가끔은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오는 십리 길을 끝까지 걸을 수도 없었다. 이런 날은 들에서 농사일하던 아버지가 나를 업고서 집으로 와야 했다. 그때 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내자식이 원…." 뒷말을 삼키는 아버지의 마음을 그때는 몰랐다. 게다가 인내심이라곤 쥐꼬리만했다. 뭔가를 해보겠다고 큰소리치고는 이내 중단하길 밥 먹듯 했다. 이런 나를 두고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두표, 저눔이 지 형 끈기를 반 만 닮아도…." 뒷말을 삼키는 어머니의 마음을 그때는 몰랐다. 몸은 약하고 인내심도 없는 데다가 똑 부러지게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 어디에 쓰랴. 그런 내게도 가끔은 뽐내고 싶은 게 있기도 했다. 복자기나무처럼. 국민학교 1학년 때 반에서 36등을 했다. 돌연변이라는 식구들의 놀림에 분이 나서 울면서 대들었다. "2학년 가선 1등 할 껴. 두고 봐." 2학년 때 2등인지 3등인지 했다. 어쨌든 1등은 아니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식구들에게 뽐냈지만, 반응이 시큰둥했다. '겨우 그거 가지고….' 그때 어머니만은 달랐다. 코가 쑥 빠져 있는 나를 업고 춤을 췄다. 국민학교 3학년 운동회날, 여섯 명씩 뛰는 달리기에서 3등 하고 연필 한 자루를 상으로 받았다. 이날 아버지는 나를 목말 태우고 크게 웃었다. 나는 창피했지만.

이렇게 변변치 못한 내게 세상은 쉽지 않았다. 온통 난제(難題), 난제투성이였다. 주저앉고 싶을 때도 숨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나를 붙들어 준 건 뒷말을 삼키며 나를 안쓰러워하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1등도 아닌 나를 업고 춤추던 어머니의 가슴, 여섯 명 중 겨우 3등 한 나를 목말 태우고 크게 웃던 아버지의 심장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았다. 그럭저럭. 이런 나를 두고 아내는 "당신, 이만하면 잘 산 거예요."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나는 단양이 좋다. 그곳에는 1930년대 신사 같기도 하고, 여덟 살 남자아이 같기도 한 가로수가 있다. 그 가로수가 나와 닮은 이야기를 간직한 복자기나무라서 좋다. 그 이야기를 듣노라면 이제는 꿈에서조차 보이지 않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떠올라서 특히 더 좋다. 나는 감히 말한다. 삶이 무거워 주저앉고 싶다면, 단양엘 가라고. 가서, 복자기나무 가로수 아래를 걸어보라고.

주) 복자기나무 이름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복인(服人)'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복장이나무의 '복장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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