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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표

수필가

드디어,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졸리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자고, 일어나고 싶으면 일어나고, 밥도 먹고 싶을 때 먹었다. 한밤중에 일어나 어두컴컴한 창밖을 오래오래 바라보고만 있어도 괜찮고, 뱃살을 뺀답시고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매봉산과 구룡산을 왔다 갔다 해도 괜찮았다. 친구를 만나 전혀 생산적이지 않은 수다를 몇 시간씩 떨기도 하고, 학창 시절 앨범을 꺼내놓고 한나절을 훌쩍 보내기도 했다. 어떤 날은 종일토록 나를 멍한 상태로 놓아두기도 했다. 거리낌없이 내 맘대로.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건 내 평생 꿈이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한 여덟 살 때부터(국민학교 입학 전은 시간에 관한 기억이 없으므로 빼버리고) 상근 직장인으로 마지막 출근을 했던 작년, 예순네 살의 마지막 날까지, 나는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꿈꾸며 살았다.

기억이 틀릴 수도 있겠지만, 내가 거짓말을 처음 배우고 행한 건 국민학교 일 학년 여름방학 때다. 방학 동안 실천했다는 일일생활계획표와 매일 썼다는 일기장을 방학 숙제 결과물로 학교에 제출했지만 그건 거짓말이었다. 나는 생활계획표대로 산 날이 하루도 없고, 일기는 방학이 끝나기 이삼일 전에 한 달 치를 몰아서 다 썼다. 중학교 삼 학년 때는 일종의 근로장학생이 되었는데, 두어 달 하고 그만뒀다. 매일 아침 일정한 시간에 교무실로 가서,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두 개의 신문을 받아(선생님이 학생들이 읽을 만한 기사에 빨간 사인펜으로 네모 표시를 해놓았다.), 게시판 두 곳에 붙이면 되는 일이었다. 힘든 일도 아니고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일도 아니었으며, 교무실에 갈 때마다 선생님들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칭찬해 주는 일이었는데도 말이다. 고등학교 일 학년 때는 반에서 55등을 한 적이 있다. 우리 반 전체 63명 중 운동 특기생 5명을 빼면 거의 꼴찌를 한 셈인데, 시험 보는 날 늦잠을 자서 학교엘 삼 교시쯤 갔기 때문이었다. 국민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졸업식장에서 개근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대학 사 학년 때는 한 과목의 기말시험 보는 날을 까먹는 바람에 졸업을 한 학기 늦게 할 뻔하기도 했다.

이런 내가 직장을 다니기 시작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맞벌이였음에도 아내는 아침마다 나를 깨우느라 전쟁을 치뤘다. 그러고도 부족해서 가끔 나는 특별한 사유 없이 직장에 결근계를 내곤 했다.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자 직장 내에서 나는 '희한한 병을 앓고 있는 웃기는 놈'으로 소문이 났다. 그렇지만 내 병은 고쳐지지 않았다. 날마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똑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똑같은 시간 동안 일을 하고, 똑같은 시간에 잠을 자는 게 종종 못견디게 싫어지는데 어쩌랴.

이런 내게 드디어 올해 첫날부터 시간으로부터의 자유가 주어졌다. 평생 꿈꾸던 '자유'인데 오죽 좋았을까. 그 '자유'를 만끽했다. 거리낌 없이 내 맘대로. 그런데 겨우 열흘쯤 지났을까. 불안감이 슬슬 싹트기 시작하더니, 한 달쯤 됐을까. 그 불안감은 내 모든 신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누가 깨운 적도 없고, 알람을 예약하지도 않았는데 여섯 시면 잠에서 깨는 거였다. 일곱 시쯤 눈이 떠진 어떤 날은 늦은 줄 알고 황급히 샤워하고 와이셔츠를 입다가 문득, '내가 왜 이러지?' 하는 자각을 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말도 안 한다. 정말 놀랄만한 건 내가 스스로 나를 예전과 똑같이 바쁘게 몰아간다는 사실이었다. 몇 시에 일어나고 몇 시에 자고, 오전엔 뭘 하고 오후엔 뭘 하고, 월요일엔 뭘 하고 화요일엔 뭘 하고, 반년 동안 뭘 하고 일 년 동안 뭘 하고, 등등. 생활계획을 짜고, 하루를 점검하는 일기를 쓰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다.

아아, 결국 내가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산 건 이렇게 잠깐, 허망하게도 정말 잠깐뿐이다. 그렇게도 평생을 꿈꾸던 '시간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는데 이게 뭐란 말인가. 내가 자발적으로 나를 시간 속에 도로 가두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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